2016. 7. 24

더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슥6:1-15

사무엘 S. 스컬이라는 사람이 미국 애리조나의 사막에 있는 농장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토네이도가 들이닥쳤습니다. 날이 밝자 사무엘은 아픈 몸을 일으켜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려고 밖으로 나갔는데, 농장은 우박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트럭은 헝겊처럼 찢겨져 땅에 쳐박혀 있었습니다. 집은 지붕이 반파되었고, 닭장은 어디론가 강풍에 휩쓸려 간 듯 보이지도 않았고, 죽은 닭들은 어지럽게 널려 있었습니다.

온통 파괴와 황폐의 잔해 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망연자실한 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그 때가 동쪽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너져 내린 잔해 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수탉 한 마리가 더미 속에서 힘겹게 몸을 비비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수탉의 몸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고 깃털도 대부분 빠져 버리고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탉이 잔해 더미 밖으로 올라서더니, 그 더미의 제일 높은 나무판자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수탉은 앙상한 날개를 퍼득거리며 의기양양하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수탉은 본능적으로 아침마다 희망을 노래한 것입니다.
수탉은 토네이도나 태풍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수탉은 호흡이 붙어 있는 한 아침마다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절망스런 환경 가운데서도 자기 할일을 하는 수탉에게서 희망을 발견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절망할 일은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갑작스레 몸에 질병이 생긴다든지, 사업에 어려움이 온다든지, 사랑했던 사람이 떠났다든지, 갑작스런 자연재해로 사고를 만났다든지 하는 고난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때 절망을 선택하지 않고 희망을 선택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 다면 본능적으로 희망을 선택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상황은 절망스러운데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바대로 스가랴가 살고 있는 시대적 상황은 정말 절망적입니다.
유대인들은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로 살다가 자기의 옛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쌓는 일을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짓다가 주변 나라의 반대로 2년 만에 중단하게 됩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4년이나 지났습니다.
유대인들이 다시 성전을 지을 수 있는 확률은 제로 % 였습니다.
70년 만에 돌아온 땅입니다. 폐허입니다. 포도나무, 올리브 나무 다 말라 죽었습니다. 가진 돈도 없습니다. 곡식도 없습니다.
정치적으로 유대인들을 도와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자신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선포한 고레스 왕도 죽고 그 다음 왕 아닥사스다 왕이 성전 짓는 것을 중단시켰습니다.
아무도 희망을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최고의 불행은 내일을 향해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최근에 한국 젊은이들이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누가 14년 동안 성전 짓기를 중단하고 절망과 낙심에 빠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희망을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환상을 보여 주시면서 희망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스가랴서에는 8가지 환상이 나오는데 오늘 스가랴 6장이 마지막 8번째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환상을 한번도 아니고 8번이나 계속 보여 주십니까?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희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상황이 어렵습니까?
그때 희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희망을 가지는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