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14

갑절의 성령을 부어주시는 은혜

왕하 2:1-14

 

고대에 한 나라에 큰 기근이 왔습니다.

그 왕은 나라의 곡간을 열어 백성들에게 가져 갈수 있을 만큼 양식을 가져가라고 하였습니다.

첫 번째 남자가 작은 바구니를 들고 와서 하루 분 양식을 가져갔습니다. 그 다음 사람은 커다란 자루를 들고 나와 1주일 양식을 가져갔습니다. 그 다음 사람은 큰 수레를 끌고 와서 1년 치 양식을 가져갔습니다.

작은 바구니를 들고 온 사람은 자기 집 앞으로 큰 수레에 양식을 가득 담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순간 격분하였습니다. 그는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불평을 털어놓고 왕이 불공평하다고 하였습니다. 왕에게 그 말이 들어갔습니다.

왕은 그를 불러 왜 큰 그릇에 양식을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의 창고는 열려 있습니다.

디엘 무디, 요한 웨슬레, 죠지 휫필드, 챨스 피니, 빌리그래엄 같은 사람은 엄청난 영적거장으로 살고 우리는 그냥 그럭저럭 평범하게 삽니까?

여러분 무디를 만드신 하나님이 여러분도 만드셨음을 믿습니까?

여러분들도 영적인 거장들처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고 누립니까?

오늘 엘리야와 엘리사 사이에 일어난 일을 통해 그 답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여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을 다 죽인 자이며 3년 반 동안 내리지 않는 엄청난 가뭄 속에서 하늘에서 큰 비가 내려오게 한 자로 이스라엘에 유명한 선지자로 알려졌습니다.

엘리야에게는 많은 생도들이 몰려왔습니다. 우상숭배만 하는 북쪽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선지생도들이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제사장이나 선지자로 인정해 주지 않았기에 그들은 들판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어느날 엘리야가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천국에 가는 것은 생도들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누군가의 예언으로 일찍 엘리야의 죽음을 알려 주었던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왕하2:1)

엘리야는 죽음직전에 길갈에서 떠납니다. 이 길갈은 가장 큰 선지학교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이 됩니다. 열왕기하4장에서도 엘리사가 길갈에서 생도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나옵니다.

길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으로 천막을 치고 거주한 곳이고 처음으로 할레를 받아 애굽의 수치가 굴러 갔다고 말하여 길갈로 불렀습니다. 길갈은 수치가 굴러간 곳입니다.

그래서 길갈의 시작의 장소의 의미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이곳 길갈에 남아 있으라고 말하고 벧엘로 갑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왕하2:2)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여기 길갈에 머물라고 하며 벧엘로 떠나려고 합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는 맹세하노니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라고 대답하며 따라갑니다.

길갈에서 벧엘까지는 약 12km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벧엘에 도착하자 그곳에 선지생도들이 있었습니다.

벧엘에 있는 선지 생도들은 엘리사에게 왜 이곳까지 따라 왔느냐 하며 엘리야 선지자가 곧 승천할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자신도 알고 있다고 하며 잠잠하라고 말합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이제 그만 자신을 따라오고 이곳 벧엘에 머물라고 말하고 여리고로 간다고 말합니다. 벧엘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처음으로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곳이고 또 야곱이 도망을 가다가 꿈에 사닥다리가 있고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한 것을 보고 예배를 드린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벧엘은 예배가 시작되는 장소입니다.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왕하2:3-4)

엘리사는 벧엘에 머물리 하였지만 여전히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며 여리고로 따라갑니다.

벧엘에서 여리고는 20km 정도됩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여리고에 도착하자 그곳에서도 선지 생도들이 있었습니다.

여리고에 있는 생도들도 엘리사에게 왜 이곳까지 따라왔느냐 하며 엘리야 선지자가 곧 승천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자신도 알고 있다며 하며 잠잠하라고 말합니다.

엘리야는 엘리야에게 이제 그만 따라고 오고 이곳 여리고에 머물라고 말하고 자신은 요단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여전히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며 요단까지 따라갑니다.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왕하2:5-6)

여리고에서 요단강까지는 8km정도됩니다.

여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만난 첫 번째 성이 무너진 장소입니다.

여리고는 첫 승리의 장소입니다.

엘리야가 여리고를 떠나 요단강으로 가자 엘리사도 바짝 따라가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선지 생도50명도 따라갔습니다.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왕하2:7)

요단강에 도착한 엘리야는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요단강을 치매 물이 갈라지고 마른 땅이 나타나자 두 사람이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이것은 엘리야의 능력이었습니다.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왕하2:7-8)

요단강을 건넌 이후 그제서야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느냐 물었습니다.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왕하2:9)

아니 엘리야는 왜 이제야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지를 구하라고 말하였습니까?

그냥 길갈에서 내가 너를 떠나 하늘로 가는 데 너에게 무엇을 해 줄까 하면 안됩니까?

길갈에서 벧엘 까지 12km, 벧엘에서 여리고까지 20km, 여리고에서 요단강까지8km

직선거리로만 해도 40km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직선거리가 아닙니다. 아마 며칠 걸렸을 것입니다.

엘리야가 길갈, 벧엘, 여리고에 머문 것은 그 세 장소에 다 선지학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이 3장소를 옮길 때마다 계속 되풀이 되는 말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길갈에 머물라, 벧엘에 머물라, 여리고에 머물라 말하였습니다. 엘리야는 3번이나 머물라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나이다.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나이다.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나이다. 엘리사는 3번이나 떠나지 않겠나이다. 말하였습니다.

떠나지 않겠다는 말은 원어에는 버리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은 유명할 때, 능력이 있을 때, 가까이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힘이 없을 때, 능력이 없을 때 버리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진짜 좋은 사람은 힘이 없을 때, 연약할 때, 변함없이 함께 하는 자입니다.

이것을 동행이라고 말합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너무 쉽게 떠납니다. 또 너무 이기적이어서 동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좋은 공동체는 동행하는 자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변함없이 천국 갈 때까지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자가 되십시오.

 

엘리야가 이렇게 계속 장소를 옮기면서 이곳에 머물라고 말한 것은 엘리사를 시험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충성심과 간절함을 테스트한 것입니다.

여러분 큰 은혜를 받는 자들은 몇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간절함입니다.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 때까지 매달리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천번제를 드리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머리를 무릎에 넣고 매달리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120명의 성도들은 40일 동안 성령이 부어지길 기도하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시험에 통과하였습니다.

큰 은혜는 간절히 사모하는 자가 받습니다.

엘리야가 물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하니 엘리사는 좀 생각해 보겠다고 하지 않고 곧바로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이것은 교만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입니다.

나는 스승에 비해 너무나 보잘 것 없고 무능한 자이니 스승이 가지고 있는 성령의 능력의 배를 받아야만 사역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스승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갑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무능을 알았습니다. 그는 겸손하였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갈급했습니다.

엘리사가 갑절의 성령을 구한 것은 거룩한 욕심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살수 없는 자임을 깨닫고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어제보다 배로 부어 달라고 기도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엘리사였다면 무엇을 요구하겠습니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줄까 말했을 때 지혜를 구했습니다.

엘리사는 무엇을 줄까 말했을 때 갑절의 성령을 구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유산,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탕자 아닙니까?

하나님에게 늘 돈을 달라고 하니… 평생 예수를 믿어도 돈만 달라고 하니…

여러분 위대한 인생을 사는 자는 구하는 것이 다르고, 소원이 다르고, 관심이 다릅니다.

여러분 탁월한 인생을 살길 원하십니까?

관심을 바꾸어야합니다. 관심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여러분 돈을 구하지 말고 성령하나님을 구하십시오.

여러분은 최근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갑절의 성령을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목숨 걸고 성령님을 부어 달라고 매달려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가 만납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29:13)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8:17)

저는 오늘 우리의 냉냉한 심령에 성령의 불이 임하게 되길 축원합니다.

여기서 저는 엘리사가 무엇보다도 갑절의 성령을 구했다는 것이 엘리사의 위대함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날 성령이 내린 것도 모르는 자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구하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현대인들은 신약 사도행전에 성령이 내린지 2천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성령이 계시는 것도 모르고, 성령을 구하지도 않고 사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성령을 모르는 자는 기적도, 치유도, 능력도 경험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구약이나 신약시대보도 더 악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도덕불감증의 시대입니다. 너무나 악한 것이 많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죄를 짓고도 죄인 줄도 모릅니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온갖 죄악들이 성행합니다.

젊은이들이 타락하고 정신질환이 넘치고 자살이 넘치고 수많은 가정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더 더욱 갑절의 성령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