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년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목사와 찬양 사역자 생키가 영국에 가서 집회를 하다가 당시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따돌림을 받고 있는 집시촌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길 원했습니다.

그들이 마차를 몰고 집시촌에 들어가자 집시촌의 소년들이 무디와 생키가 있는 마차 주변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때 생키는 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유명한 설교자로 세우실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실현될 확률은 1%도 없었습니다.

그 소년의 어머니는 몇 년 전에 천연두로 죽었으며 소년은 글도 읽지 못하였고 예수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후 그 소년은 생키가 말한 대로 젊은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젊은 전도자는 미국에까지 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생키가 살고 있는 뉴욕에 도착하여 생키를 찾았습니다.

그는 생키에게 과거에 무디와 함께 영국 집시촌에 온 일을 기억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생키는 기억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젊은 전도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은 마차 옆에 서 있던 어린 집시 소년들을 기억하십니까? 그리고 당신이 한 소년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께서 너를 설교자로 만드실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생키는 “네 그것도 기억하지요?라고 답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제가 바로 그 소년입니다.”

생키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 젊은이는 집시 스미스로 널리 알려진 로드니 스미스목사입니다.

그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로드니 스미스는 집시촌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다가 생키의 축복의 말 한마디에 꿈을 가졌고 그 축복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성경은 죽고 사는 것이 말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잠18:21)

말은 씨앗과 같습니다. 씨앗을 뿌리면 열매를 맺는 것처럼 말을 뿌리면 그 말의 열매를 먹게 됩니다.

축복의 말을 하면 축복의 열매를 거두고 저주의 말을 하면 저주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말을 듣기보다 나쁜 말을 들으며 사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눈만 뜨면 들려오는 소식은 좋은 소식보다 부정적인 소식이 가득합니다.

매일 뉴스는 좋은 뉴스보다 부정적인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합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더 잘 봅니다.

나 자신을 바라볼 때, 나는 이것도 못해, 저것도 못해 하며 늘 자신을 나쁘게 판단하기 쉽습니다.

사람에게는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자아상이 아주 중요합니다.

나 자신을 스스로 생각할 때 패배자나 피해자로 생각하면 늘 부정적인 인생을 살고 나 자신을 이기는 자로 생각하면 이기는 자로 삽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질문을 해 보면 재미있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별볼일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겨우 소수의 사람만 자신을 이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좋은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왜곡된 자아상을 가진 자는 대부분 어릴 때는 부모가 말로 상처를 많이 주었기 때문이고 결혼 후에는 배우자가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원래 우리는 어떤 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원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자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것을 다스리는 자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이기는 자로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내 기분, 내 생각, 내 느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처음으로 요단강에 가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3:17)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예수님에게 하셨던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누구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 때문에 자존감을 가지시고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계시는 주님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3)

나는 약하지만 내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 때문에 강한자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롬8:26)

나는 지혜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니 나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5)

나는 늘 넘어질 수밖에 없지만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 때문에 늘 승리하는 인생을 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15:57)

나는 작은 문제 앞에서도 낙심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자이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계시기에 모든 문제들을 넉넉히 이기는 자로 삽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8:37)

여러분 여러분 스스로를 패배자로 피해자로 무능한 자로 여기며 살지 말고 여러분 안에 계시는 예수님 때문에 이기는 자로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하나님께서 너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축복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며 자존감 넘치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는 이 축복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창조적이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인생을 살아야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아주 존귀한 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나 한명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사람이고 아주 소중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길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12:2)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12:3)

하나님은 이삭에게도 동일한 축복을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창26:2-4)

하나님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훔치고 도망을 가는 야곱에게도 축복하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창28:15)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축복의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성경에는 축복이라는 단어가 아주 많이 나옵니다.

구약성경에는 히브리어로 축복이라는 단어는 ‘바라크’인데 이 단어가 330번 나오고 신약에는 헬라어 ‘유로기오’라는 단어가 44번 나옵니다.

구약에 가장 대표적인 축복 사건은 야곱이 형의 축복을 빼앗은 일입니다.

이삭이 노년에 눈이 멀어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장남 에서에게 축복하기 위해 별미를 구해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부인 리브가가 듣고 야곱에게에서 대신 들어가서 축복을 받으라고 하여 형에서 대신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일로 에서와 야곱은 원수가 되어 생이별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았던 야곱은 자신도 노년에 12 아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고 축복을 하였습니다.

창세기 50장 중에 창세기 마지막 49장은 야곱의 축복으로 마무리 됩니다.

구약에 가장 대표적인 축복은 민6:22-27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민6:22-27)

신약에는 예수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전을 방문하였을 때 기도의 사람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안고 온 마리아와 요셉에게 축복하는 사건이 기록됩니다.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눅2:3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면서 만나는 자들마다 평안의 축복을 빌라고 하셨습니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마10:12)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되 특별히 우리를 핍박하는 자도 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롬12:14)

베드로는 우리가 축복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선포합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3:9)

축복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어로 ‘복’이라는 ‘바라크’인데 이 단어는 ‘무릎을 꿇는다’ ‘형통하게 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누구를 축복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며 그 사람이 형통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축복이 하나님의 뜻이고 우리는 축복을 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누구보다도 축복을 잘 하는 축복의 대가가 되어야합니다.

축복은 돈이 없어도 됩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해도 됩니다. 나이가 많아도 됩니다.

누구나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축복을 하면 됩니까?

첫 번째로 믿음으로 축복하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축복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미래에 복이 될 것을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축복에는 예언적인 요소가 있고 또 그래야합니다.

히11장에 보면 이삭과 야곱은 믿음으로 미래를 축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히11:20)

이삭이 믿음으로 야곱에게 축복한대로 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축복한 것을 들으시고 그대로 이루어주십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히11:21)

야곱이 죽을 때에 12 아들에게 믿음으로 축복을 하였습니다.

특별한 야곱의 4째 아들 유다는 며느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자이고 뭐 특별히 잘 산 것도 없는데 유다의 후손에게서 메시야, 예수님이 태어나십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야곱이 메시야가 태어날 것을 축복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창49:8)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창49:10)

여기에 규는 통치, 주권, 왕권을 말합니다. 또 실로는 평화의 왕 메시야를 상징합니다.

유다의 후손이 형제들의 찬송이 되고 또 왕권을 잡고 메시야가 태어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믿음의 축복은 큰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 믿음의 축복대로 응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믿음으로 축복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질이 급한 다혈질인 베드로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