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유명한 문학가인 도스도예프스키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치, 가난한 사람 등을 쓴 거장입니다. 그는 육군 중위로 전역한 후 문학 활동을 하면서 러시아의 정치체제를 비판하는 동아리에 참여하였습니다. 황제 니콜라이 1세는 이 모임에 참여한 33명을 모두 체포하여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1849년 12월, 도스도예프스키는 그의 나이 28세에 공개 사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영하 50도의 추운 겨울날, 형장에 끌려온 그는 다른 사형수들과 함께 기둥에 묶였습니다. 사형 집행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5분. 그는 이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까를 생각합니다.

같이 생을 마감할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데 2분, 28년 동안의 자신 삶을 되돌아보는 데 2분, 그리고 남은 1분은 자연과의 이별을 고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도스도예프스키는 눈물로 주변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자신의 지난날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3분 후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생각이 미치자 지난날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흐르는 눈물 속에 ’다시 살 수만 있다면”이라고 되뇌입니다.

탄환의 장전과 함께 거총 소리가 들립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 그는 두 눈을 감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한 병사가 흰 손수건을 흔들면서 달려왔습니다. 황제의 특별 감형령을 전한 것입니다.

그 후 도스도예프스키는 사형 대신 4년간의 중노동과 5년간의 군복무로 감형이 되었습니다.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시베리아의 혹한, 발에 채워진 족쇄, 만성적인 허기, 동상으로 썩어 들어가는 손과 발, 끊임없는 감시, 처절한 고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베리아 혹한의 중노동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스도예프스키는 자신의 죽음을 걱정하고 있는 형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형, 모든 것이 해결되었어요. 나는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형, 나는 사형 대신 4년의 중노동을 하게 된 것에 대해 나는 실망하지 않고 용기가 꺽이지 않습니다.

형,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환경이 어떻든지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해요.

형,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헛되이 낭비하였는지 후회가 됩니다.

인생은 선물이고 행복입니다.

형, 내가 말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형의 운명을 준비하십시오.

극한 상황을 이겨내고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풀려난 도스도예프스키는 시간을 늘 황금처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는 절망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이는 수많은 불후의 명작들로 이어졌습니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은 도스도예프스키는 여러 명언도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딱 한 가지만 소개합니다.

“인간은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도스도예프스키

도스도예프스키는 살아 있는 그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 모든 것이 다 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