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31

절망을 은혜로 이긴다.

룻2:8-20

저는 오늘 하나님의 은혜로 절망의 바닥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룻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떠났다가 다시 은혜를 받은 나오미와 이방 여인 룻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 왕가의 할머니가 된 룻기는 유대인들이 너무 좋아하는 성경입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인 칠칠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모두 룻기를 읽습니다.

룻기는 4장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책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룻기를 거의 암송합니다.

유대인들은 룻기를 통해 과거의 죄나 실패로 인해 하나님을 떠났다 하더라도 다시 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 주신 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절망하지 않는 민족이 됩니다.

룻기는 성경 66권 중에 가장 하나님의 은혜를 잘 드러내는 은혜의 책입니다.

룻기에는 헷세드 라는 은혜라는 단어가 7번 등장합니다.

한글 성경에는 헷세드가 선대로 두번, 은혜로 네번, 인애로 한번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면 룻기를 읽으시기를 권면합니다.

룻기에는 나오미와 룻이라는 두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룻기는 만들어낸 허구의 소설이 아니라 정말 일어난 Fact, 사실입니다.

룻기는 B.C1200년 경 사사시대에 베들레헴에 큰 기근이 왔을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구약 성경에 기근과 흉년은 대부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한 결과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살던 사사시대에 유대인들은 우상숭배가 심하였고 예배는 점점 쇠퇴기에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로 기근과 흉년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기근과 흉년이 오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하나님을 떠나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이방 땅인 모압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지도를 살펴보면 베들레헴과 모압 사이에 사해 바다가 있어서 모압으로 가려면 베들레헴 위쪽에 있는 예루살렘을 지나서 요단강을 건너서 오른 쪽으로 가서 다시 밑으로 내려가서 아르논 강을 지나야합니다. (지도 ppt 부탁합니다.)

지도상으로 대충 100km는 넘게 가야합니다. 족히 일주일은 넘게 걸렸을 것입니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 라는 뜻이고 ‘나오미’는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그 부부의 이름은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믿음을 버리고 그노스라는 우상을 섬기는 모압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오미 부부가 생존을 위해 믿음을 버리고 우상 숭배의 땅으로 간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오미는 모압 땅에 가서 정착하였습니다.

다행히 모압 땅은 기근이 없었고 나름대로 먹고 살 것이 풍부하였습니다. 그들은 모압 땅에 온 것을 참 잘 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부유함은 그 자체가 저주입니다.

행복해 보이던 나모미의 인생에 갑작스런 위기가 닥쳤습니다. 그것은 평생 함께 살 것 같았던 남편이 갑자기 죽은 것입니다.

이방 땅에서 남편이 죽는 다는 것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남편의 죽음은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써 하나님과 연결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남편이 죽은 뒤 두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남편이 죽은 고통을 잊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도 얼마가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두 아들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한번 나오미의 입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남편이 죽은 것도 슬픈 일인데 아들까지 죽고 말았습니다.

한 아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 두 아들 다 죽고 말았습니다.

나오미는 나이도 많고 재산도 다 날리고 먼 타국에서 혼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오미는 성경에 나오는 여자 중에 가장 슬픈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빈 털털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룻1:21)

나오미가 경제적으로 가난하게 된 것 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저주하였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돌아 왔을 때 동네 사람들이 나오미가 돌아 왔다고 환영을 하자 자신을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즐거움이라는 말이고 ‘마라’는 괴로움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한 가지 조심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심각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치셨어 하며 그 자리에 포기하고 절망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더 이상 죄가 여러분을 노예로 묶도록 절망 속에 빠져 있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놀라운 인생을 살게 할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고난은 징벌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것이 나오미의 위대함입니다. 아무리 망해도 하나님의 은혜는 있습니다.

이제 나오미의 큰 며느리 룻을 살펴보길 원합니다.

룻은 나오미의 가족을 만나 큰 아들 말론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평생 모압 지방에서 살면서 그노스라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나오미의 집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하나님이라는 신을 알았습니다.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인 룻을 딸처럼 대해 주었습니다. 나름대로 행복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죽자 큰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습니다.

룻은 10년 동안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을 정말 자신의 신으로 믿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룻에게 나타난 절망은 하나님을 붙잡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두 아들이 죽은 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오르바와 룻 두 며느리도 함께 따라 나섰습니다.

나오미는 모압의 국경인 아르논 강을 건너기 전에 두 며느리에게 모압 땅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원한다며 축복하였습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룻1:8)

여기에 ‘선대’로 번역된 것이 원어에는 ‘헷세드’ 즉 ‘은혜’입니다.

나오미는 아무리 큰 절망에 빠져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을 믿었습니다.

나오미의 말을 들은 오르바는 다시 모압 땅으로 돌아갔으나 룻은 계속 나오미를 따라오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룻에게 “오르바처럼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가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룻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1:16)

룻이 나오미를 따르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한 번의 선택이 영원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선택을 잘 해야합니다.

오르바는 모압땅을 선택하여 고향으로 돌아갔고 룻은 베들레헴을 선택하여 믿음의 땅으로 들어갑니다.

오르바는 그 당시 사람들의 상식에 따라 평범한 선택을 하였고 룻은 믿음에 따라 고난과 가난이 있는 믿음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길은 좁은 길이며 외로운 길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좋아 보이는 넓은 길로 가지 말고 고통이 있더라도 좁고 외로운 믿음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룻은 평범한 이방 여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주의 자리에서 은혜의 자리로 옮긴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에겐 하나님의 눈동자처럼 소중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에겐 가장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온 룻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십니까?

첫 번째로 룻은 좋은 만남의 은혜를 받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절망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하나님 품속에 들어갈 능력은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품속에 들어간 자에겐 희망이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가장 하나님께 올인 한 자가 누구입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방여인 룻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온전히 하나님께 다 던졌습니다.

여러분 룻이 어떻게 다윗 왕가의 할머니가 됩니까?

룻이 어떻게 이방 여인인데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위대한 여인이 됩니까?

바로 하나님께 올인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모압 땅에 자기 부모가 살아 있습니다. 그냥 모압 땅에 남아 부모 곁으로 돌아가서 재혼을 하면 됩니다.

나이도 젊고 얼마든지 다시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시어마니를 따라 언어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믿는 신도 다른 이방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베들레헴에 따라 온 것은 그녀가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 전체를 다 던진 것입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의 눈에는 룻이 가장 불쌍한 자 같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유대 땅 전체에 가장 큰 믿음을 가진 자였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내가 가진 것으로, 사람들의 판단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대로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올인 한 자를 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께 올인하는 자에게 은혜와 좋은 것을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올인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올인하실 것입니다.

룻이 평범한 일상이었던 우상숭배의 삶을 버리고 과감하게 하나님께 올인 한 것은 그녀의 인생에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룻은 이제 베들레헴에 들어와서 하룻밤을 자고 베들레헴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룻은 베들레헴의 새 아침을 시작하면서 은혜를 구하고 기대했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룻2:2)

룻은 늙은 시어머니에게 “나는 새댁이니 집에 있겠습니다.”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이삭줍기를 떠났습니다.

여러분 나오미나 룻처럼 절망의 자리에 있습니까?

신세를 한탄하고 걱정하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손을 잡고 은혜를 기대하며 다시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룻은 가난하다고 신세한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꽉찬 하루를 삽니다.

룻이 이삭줍기를 하러 갔는데 우연히 보아스의 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2:3)

여기에 우연히 라는 단어는 ‘미크레하’인데 이 단어 안에는 기회와 행운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우연히 라는 것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연한 만남이 있지만 우리 예수를 믿는 자에겐 우연이 아니라 기회이며 행운입니다.

우리의 모든 만남은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