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7 창15:1-7 은혜의 선물은 믿음을 통해 얻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은 은혜에 대해 듣게 되고 알게 됩니다. 은혜를 들었다고 해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은혜를 안다고 해서 다 그 은혜를 누리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올해 우리 기쁨의 교우들이 모두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고 우리의 한계를 뛰어 넘는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이후 죄악이 만년한 세상에 노아의 10대 후손인 아브라
2021.1.10. 하나님의 호의가 따라다니는 사람. 시23:6 부모가 있는 자녀와 부모가 없는 고아는 삶을 사는 방법이 전혀 다릅니다. 부모가 있는 자녀는 아침에 일어나 식사할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늦잠을 자도 별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식사를 준비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아는 일찍 일어나 자기 스스로 밥을 해야 합니다. 늦잠이라도 자면 그날 아침을 먹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있는 자녀는 별 긴장을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그 자녀에게 베풀어 주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아는
은혜 안에서 이긴다. 삼하9:1-13 나니아 연대기를 쓴 CS 루이스는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은 바로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히브리말로 은혜라는 말은 헨이라는 말과 헷세드라는 말이 있습니다. 헨이라는 말은 왕이 마차를 타고 가다가 마차에서 내려와 거지의 손을 잡아 주고 선물을 주는 과분한 행위를 말합니다. 헷세드라는 말은 은총, 인자, 호의라고 번역을 하는데 이 말은 상대방의 행위에 의해 주어지는 사랑이 아니고 상대방과의 약속에 의해 주어지는 불변의 사랑입니다. 헨과 헷세드는 둘 다 은혜를 말하는 것입
2020. 12. 27 광야의 은혜 신2:7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인생을 무엇에 비유하면 좋을까요? 성경은 우리의 인생을 광야로 비유할 때가 많습니다. 구약성경에만 광야라는 단어가 270번 나옵니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 인데 이 말은 거친 땅, 빈들, 사막, 불모지로 번역이 됩니다. 광야는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곳입니다. (이스라엘 광야나 사막 PPT 부탁합니다.) 여러분이 성지순례를 가서 이스라엘 광야에 가보면 숨이 탁 막힙니다. 산
2020. 12. 20 마1:18-23 예수님은 왜 오셨는가? 이번 주 금요일이 크리스마스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는 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매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크리스마스를 맞이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한번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1:18) 여기에 ‘나심
2020. 12. 6 시90:1-17 인생이 허무하지 않으려면 2020년이 시작된지 어제 같은데 벌써 2020년의 마지막 달만 남았습니다. 참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세월이 빨리 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인생이 참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40대 중반의 남자의 글입니다. 불쑥 불쑥 공허해집니다. 아이들은 공부하기에 바쁘고 부모님은 연로하셔서 여기저기 많이 아프십니다. 아내는 바쁜 아이들과 쇠약해진 부모님 보살피느라 정신이 없고 저 역시 하루종일 일만하며 삽니다. 물론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지만
2020. 11.29 요21:15-25 실패한 자를 다시 쓰시는 주님 이 세상에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실패를 하지만 실패가 인생을 망치는 것이 아니고 실패한 채로 계속 실패의 장소에 머물고 있는 자가 인생을 망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제의 모든 것은 지나갔고 이제 오늘 새롭게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이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를 사는 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가 제자의 삶을 포기하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