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1
나의 절망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
겔37:1-14
펄벅 여사는 그의 작품 가운데에 「어머니의 초상」이라고 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펄벅 여사는 자신의 어머니 에 관한 얘기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22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인 남편을 따라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대륙 중국으로 건너갑니다. 미국과의 교통이 두절되어지고 아무런 연락도 되지 않은 채 굶주림과 많은 생명의 위험 속에서 선교활동을 계속합니다.
선교지인 중국에서 일곱 자녀가 태어납니다. 그 가운데 네 자녀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리고 세 자녀를 키워가는 데 어릴 때 보았던 그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펄 벅은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어머니의 얼굴 속에서 고통스러운 모습이나, 우울한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또 내 어머니가 들려준 얘기 가운데 절망적인 얘기를 내가 들 은 적이 없다. 언제나 희망이 넘치는 믿음의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시곤 하셨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펄벅은 ‘대지’라는 소설을 쓰게 되었고 1938년에 미국 여성 작가 중에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젊은이여 자기 자신을 무력하다고 생각하며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자기 자신을 무력하다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그 누구도 무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어둡고 절망스럽다 하더라도 우리는 희망을 선포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절망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절망의 무덤 속에 있는 뼈들에게 희망을 노래하는 자를 보게 됩니다.
그는 죽은 지 오래된 마른 뼈들을 향해 살아나라고 외칩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으로, 자기의 의지로 희망을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가와 희망을 말하라고 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아무리 큰 절망 속에 있다 해도 절망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믿고 희망을 외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보겠습니다.
에스겔은 유대땅에 살았던 제사장의 아들이었습니다.
BC586년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유대땅을 침공하여 예루살렘 성은 멸망하고 성전은 불에 다 타버리고 백성들은 죽거나 포로로 끌려가는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왕하24:14)
이때 에스겔이 유대의 마지막 왕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여기에 다니엘도 함께 끌려갔습니다.
에스겔이 포로로 끌려갈 때 그의 나이는 25세 정도 됩니다.
그는 깊은 절망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유다의 제자장의 신분이지만 지금 포로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바라보아도,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도 어디를 보아도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지만 현실을 보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지 회의가 들었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땅의 그발 강가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살았습니다. 그가 포로생활을 한지 한 5년 정도 되었을 때 그의 나이 30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겔1:1)
에스겔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절망속에 있는 에스겔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스겔서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에스겔1-24장까지는 유다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기록되고
에스겔25-32장까지는 유다의 주변국가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기록되고
에스겔33-48장까지는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세 번째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말씀 중 37장을 보고자 합니다.
이제 본문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겔37:1-2)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나타나셔서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의 눈에 보이는 뼈들은 땅속에 매장이 된 것이 아니고 골짜기에 그냥 가득 깔려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은 시체와 접촉을 하면 부정하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에스겔은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곳으로 갈 때 긴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마른 뼈는 무엇을 말합니까?
죽은 지 오래 되었다는 것이며 도무지 살 소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마른 뼈를 보여 주시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겔37:3)
여기에 인자는 에스겔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수 있겠느냐하고 물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골짜기에 나뒹굴고 있는 마른 뼈들을 보여 주시면서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우리의 대답은 대부분 “아닙니다. 이런 뼈들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에스겔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우리보단 조금 지혜로워서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왜 에스겔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절망 중에 있는 에스겔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절망 중에 있는 자들에게 희망을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오늘 살아 있지만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처럼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사는 분이 있습니까? 살긴 살아 있지만 죽은 자처럼 사시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분에게 희망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여러분, 나는 나를 포기할 수 있지만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시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환경을 보고 희망을 찾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보고 희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에겐 절망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길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아무리 마른 뼈와 같은 상황에 있다 해도 희망을 가지십시오.
여러분 희망이 없는 적은 없습니다. 단지 희망을 포기한 자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막에도 꽃은 핍니다. 쓰레기 더미에도 장미는 피어납니다. 씨앗만 있으면 됩니다.
그 씨앗이 바로 희망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마른 뼈와 같은 상황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까?
첫 번째로 마른 뼈가 살아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겔37:4)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하며 외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뼈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외쳤습니다.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겔37:7-8)
여러분 죽은 지 오래된 마른 뼈들을 향해 살아나라 말한다고 살아나겠습니까?
그런데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죽은 지 오래된 마른 뼈들이 살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에스겔의 상태는 뼈들이 살아나라 말할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나라도 빼앗기고 포로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포로 생활을 하는 중에 사랑하는 아내도 죽었습니다.
“내가 아침에 백성에게 말하였더니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으므로…” (겔24:18)
정말 에스겔의 상황은 최악입니다. 그는 자신이야말로 마른 뼈 그 자체입니다.
그는 살아 있지만 사실 죽은 자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에 순종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상황이 마른 뼈처럼 도무지 살 소망이 없습니까?
나를 보아도 살 소망이 없고, 아내를 보아도, 남편을 보아도 살 소망이 없고 자녀를 보아도 살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살아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천지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롬4:17)
여러분 여러분이 아무리 큰 절망 속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반드시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 (히4:12)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세상의 소리를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러분 틈만 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임하면 죽어가는 영혼이 살아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시19:7)
여러분 마른 뼈는 북을 쳐도, 아무리 고함을 쳐도,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어도, 아무리 맛있고 좋은 음식을 주어도 살지 않습니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학원을 보내고 심지어 유학을 보내도 살아나지 않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그 아이는 이미 죽은 마른 뼈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말씀을 먹이십시오.
말씀에 순종하게 하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다 마른 뼈처럼 되고 맙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4:4)
에이브람 링컨은 어린 시절 부모가 죽었습니다.
링컨의 어머니는 그가 10살 때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 성경책은 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나는 너에게 100 에이커의 땅을 물려주는 것보다 이 한 권의 성경책을 물려주는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아들아! 너는 이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다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부탁이다. 약속할 수 있겠니?”
링컨은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어머니의 유언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는 틈만 나면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죠지 뮬러는 5만 번의 기도응답을 받은 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죠지 뮬러가 신구약 성경을 200독 했다는 것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는 사람은 기도응답의 비결도 알게 되고 기도로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성경을 백독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욥이 어떻게 그 엄청난 환난과 시험을 다 이겨내었습니까?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욥23:12)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가득한 자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십시오.
내 경험을 버리고 말씀을 채우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마른 뼈, 죽은 뼈가 살아날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이 여러분을 지나가게 하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을 덮게 하십시오.
말씀이 여러분의 세포 세포를 채우게 하십시오.
여러분 이 세상에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유일한 책은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성경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있는 자는 아무리 깊은 무덤 속에 있어도 살아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마른 뼈가 살아나려면 성령이 임해야합니다.
에스겔이 골짜기에서 본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뼈들이 움직이고 이뼈 저뼈가 들어맞아 서로 연결되었고 또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여 사람의 모습을 다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생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사방에서 생기가 와서 죽은 자를 살아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대언하였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겔37:9-10)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지만 그 뼈들이 완전히 살아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생기가 임하자 그들이 살아나서 거대한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여기에 ‘생기’는 ‘루아흐’ 즉 ‘성령’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사람들이 쓴 책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 (딤후3:16)
“예언은…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벧후1:21)
그러므로 성경은 공부를 많이 한 학자가 읽는다고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그 마음에 있는 자가 읽어야 이해가 되고 작동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 사도행전 초대교회에서 발견하는 성령과 현대교회에서 생각하는 성령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교인들은 뜨거운 기도, 치유, 기적, 기쁨, 감사가 넘쳤습니다.
현대교회는 교인들은 불안, 우울, 무능, 냉소, 불평, 의심이 가득합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성령의 차이입니다. 현대교회는 말씀은 있는데 성령이 없습니다.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나에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역사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고 나를 움직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읽다가 감동이 되면 그것은 성령이 하신 일입니다.
우린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것도 성령이 하신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에 마음에 감동이 옵니다. 그것도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하게 됩니다. 그것도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을 아시죠?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
사람이 아무리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다 갖추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지 아니하면 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교육을 받고 공부를 한다고 해도 성령이 없다면 우린 한낮 짐승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 성령입니다.
여러분 현대인들은 더 많은 교육이나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생기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해도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는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닙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8:9)
이런 말씀을 하면 내 안에 성령이 계시는 지 잘 모르겠다는 분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자는 이미 성령님이 그 속에 계십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3)
오늘 이 순간이라도 진심으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십니다. 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성령이 마음에 거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의 문제는 성령이 계시는가? 가 아니라 성령이 충만한가? 입니다.
그냥 내 안에 성령이 계신 것 같아 라고 말하지 마시고 내 안에는 성령이 충만하다라고 말하십시오.
여러분 성령님은 성령님을 사모하고 환대하면 누구에게나 충만하게 거하십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충만을 구하십시오.
이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욕심충만은 금방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신 성령하나님 충만하면 됩니다.
성령충만은 특별한 사람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누구나 성령충만 할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희망이 넘치게 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15:13)
여러분 아무리 오랫동안 마른 뼈로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성령으로 충만하면 모든 절망이 사라지고 희망이 넘치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를 살리고 희망이 넘치게 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죽은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에 데리고 가서 그 죽은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생기가 임하라고 대언을 하자 그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보게 해 주었습니다.
그후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겔37:11-12)
하나님은 에스겔이 환상으로 보게 된 그 골짜기의 마른 뼈가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록 포로로 끌려와서 살고 있지만 마른 뼈는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포로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뼈라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마른 뼈는 소망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몸은 살아 있지만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자는 마른 뼈입니다.
몸은 살아 있지만 세상의 쾌락에 빠져 사는 자도 마른 뼈입니다.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딤전5:6)
향략에 빠진 자는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에 죽은 자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분노에 빠진 자도 마른 뼈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일3:14)
여러분 우리 주위에도 마른 뼈처럼 살아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가족과 관계가 깨어진 사람, 사업이 부도가 난 사람, 건강을 잃고 절망속에 살아가는 사람, 겉은 멀쩡하지만 매일 무덤 속에 사는 것 같은 사람,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 된 사람, 매일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 내일에 대한 아무런 소망도 희망도 없는 사람…
매일 세상 쾌락에 빠져 사는 사람…
여러분 오늘 마른 뼈로 살아가는 모든 분들이 살아나게 되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마른 뼈와 같이 희망이 없이 살아가는 자들에게 “무덤을 열고 거기서 나오라”고 말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아무런 희망도 없이 차디찬 무덤 속에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생기가 넘치는 살아 있는 자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무덤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무덤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