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북극에 있는 에스키모인들이 늑대를 사냥하는 방법에 대해 들어 보셨죠?
에스키모인들은 늑대를 잡기 위해 총을 쏘거나 사냥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먼저 칼날을 시퍼렇게 갈아 아주 예리하게 한 다음 칼날에 짐승의 피를 발라 밖에 내어놓아 꽁꽁 얼게 합니다. 그리고 난 뒤 그 칼을 다시 안으로 들고 들어와 그 칼날 위에 또 피를 뿌리고 밖에 두고 그 칼날에 묻은 피를 얼게 합니다. 그렇게 여러 번 하면 피가 칼날을 완전히 덮게 됩니다.
그런 다음 그 피 묻은 칼을 땅에 단단히 묻어 둡니다. 그리고 그 칼날 주변에는 고기 몇 점을 던져 놓습니다. 그러면 밤중에 늑대들이 피 냄새와 고기 냄새를 맡고 칼 주변에 접근해서 칼날에 묻은 피를 핥기 시작합니다.
늑대들은 칼날에 묻은 피를 핥다가 자신의 혀가 칼날에 찔려 입안이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 서서히 죽어버립니다. 결국 늑대는 던져진 고기와 피의 유혹에 넘어가 죽은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 번의 유혹으로 인생 전체를 순식간에 망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시련을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유혹을 받습니다.
이 세상에 유혹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서울 도시 한복판에 사는 사람도 유혹을 받고 도시를 떠나 인적이 드문 수도원에 들어가 사는 수도승도 유혹을 받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이 유혹을 받습니다.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마틴 루터는 유혹을 새로 비유하였습니다.
”새들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것은 어찌할 수 없지만 머리 위에 둥지를 틀게 하는 것은 내 책임이다.“
맞습니다. 유혹은 밭에 잡초가 피어나듯 사방에서 날아들어 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유혹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야고보가 시험을 말하다가 이제 유혹에 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야고보서 1:2-12절까지는 시험이라는 단어는 모두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당하는 고난과 시련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는 13-18절까지의 시험은 모두 유혹을 말합니다.
헬라어의 시험이라는 단어는 시련과 유혹이라는 두 단어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험이라는 단어에 시련과 유혹을 구별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성경책 야고보서 1:13-18절을 동그라미 치고 그곳에 나오는 시험을 유혹이라고 써 놓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련과 유혹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시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테스터입니다. 이 테스터는 견디고 인내해야 합니다.
유혹(Temptation)은 사탄이 주는 죄입니다. 이 유혹은 피하고 버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