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4.
지금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고후 13:5
우리 인생을 확 바꾸어 주는 것은 내 힘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순간의 결심이 아니라 내 속에 부활하신 주님이 살아 계실 때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부활절도 아닌데 부활하신 주님에 대해 살펴보길 원합니다.
이 부활은 우리 신앙의 뿌리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의 주 되심과 부활하심을 분명하게 믿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10:9)
이 두 가지가 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예수님의 주 되심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나누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크리스마스만큼 중요한 사건입니다.
신이신 예수님이 천하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도 정말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부활도 엄청난 사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에 대해서는 다 좋아하고 환영합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온 세상이 다 떠들썩하게 맞이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니까 머리로 이해가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부활절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신자들의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납니까?
사람들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은 마지막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한번 죽은 사람에게는 약사도 의사도 과학자도 아무도 살려 내지 못합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죽은 자에게도 다시 생명을 넣어 살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번 자신이 죽어 삼일 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을 들을 수 있는 귀도 없었고 또 그 말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을 말해도 제자들을 그냥 흘려버렸습니다.
그러면 언제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예언을 알게 되었습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요2:22)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야 예수님께의 말씀을 진짜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나사렛 동네에서 목수로 30년 지낸 평범한 유대인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예루살렘 성에서 태어난 왕족이나 귀족도 아닙니다. 더 더욱 예수님은 그 당시 사람들이 존경하는 바리새인이나 제사장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 허름한 시골에서 지내는 30대 총각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2천년 전에 유대 땅에 살았다면 그 청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겠습니까?
물론 그분은 말씀이 뛰어나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물리친 능력을 가진 분이기 합니다. 그렇다고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믿겠습니까?
여러분 강원도 시골에 용한 의사가 있어서 어떤 병이든 다 낫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믿겠습니까? 말도 안됩니다.
그러면 시골청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있는 특별한 능력에 반하여 그들의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3년 반이나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힘없이 죽어버리자 모든 것을 버리고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닌 것은 한낱 허황된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외치는 자로 변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바꾸었습니까?
제자들이 다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게 된 것은 부활이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갈보리 언덕에는 세 개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누가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만약 이 세 개의 십자가를 뒤섞어 놓으면 누가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첫 번째 십자가이든 두 번째 십자가이든 세 번째 십자가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진짜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신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롬1:4)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산상수훈 같은 주옥같은 말씀이나 좋은 인격이나 불치의 병을 낫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께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이야말로 예수님을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행17:31)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이 선포된 이래로 안식일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유대인들입니다.
그들도 안식일에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목숨처럼 귀히 여기며 철저히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 유대인들이 포로 생활을 한 것이 안식일을 범하였기 때문이라는 자기반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토요일 날 지키던 안식일을 갑자기 주일로 바꾸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초대교인들에게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식 후 첫날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을 기념하면서 주일날 모임을 가졌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에게는 부활이라는 것은 흥분과 감격과 행복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느 종교도 부활의 종교는 없습니다.
부활은 사람의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부활은 이 세상에서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제자들과 초대교회 교인들은 인간 예수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면 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하는지 왜 2000년 전에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해결해 주시는 보배로운 피 인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면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피입니다.
하나님의 피는 2천년전에 십자가에서 흘린 피이지만 지금 2천년이나 지난 후에도 여전히 모든 사람들의 죄를 씻기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활은 성경의 여러 사건중에 하나가 아니라 성경의 모든 말씀을 믿게 하는 근원이 되고 기독교의 핵심이며 기독교의 심장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태어나심과 가르치심과 기적을 일으키심과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심 그 다음에 부활하심을 차례대로 살펴 볼 일이 아니라 부활을 가장 먼저 이해하고 깨닫고 알고 체험한후 부활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예수님의 태어나심과 가르치심과 십자가 사건을 보아야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다 헛것이 되고 우리의 죄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채 여전히 죄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15:17)
그러므로 부활은 성경의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열쇠와 같은 것입니다.
부활은 만들어진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15장에서 부활에 대해 정확하게 말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15:3-8)
4복음서를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나십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이 오백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중에 대부분이 지금 살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말이 거짓이라면 사람들이 그 부활의 증인을 데리고 오라고 하면 거짓으로 탄로가 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부활의 증인들이 정확하게 살아 있었기에 자신 만만하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은 정말 거짓이나 꾸며낸 이야기나 신화가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2천년 전에 부활하신 사건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예수님의 부활을 아는 자 많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의심하지 않고 믿습니다. 부활을 역사적인 사실로 아는 것만으로 안됩니다. 지금 살아 계신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역사적 사실로 아는 것과 지금 부활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지금 부활하여 살아 계신 예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뜨떠미지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후13:5)
오늘 메시지의 키는 지금 살아계신 부활하신 주님 내 속에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가짜입니다.
부활하여 살아 계신 예수님이 지금 내 안에 살아 계시지 않으면 신앙생활에 아무런 흥분도 감격도 행복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