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17)
유명한 복음 전도자였던 죤 길모어 목사는 어느 날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주방용품을 팔고 있는 어느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요즘 장사는 잘 되시는지요?”
“예, 그럭저럭 잘 됩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물론 믿지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인 것 같습니다.“
” 네 맞습니다. 할아버지 그렇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요? 그게 뭔데요?” 할아버지는 아주 궁금한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할아버지와 저를 구원해 주신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믿는 자는 많습니다. 그런데 성령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바리새인이 되었어도 하나님과 동행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는 성경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아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온 세상에 어디에나 계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사울은 다메섹에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는 곧바로 눈이 멀어 3일 금식을 하였습니다. 그에게 아나니아가 찾아와서 안수를 하자 눈을 뜨게 되었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날로부터 사울은 성령하나님과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였던 성령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는 아라비아 광야로 가서 1-2년 정도 지내면서 성령하나님과 깊은 친밀감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고향 다소에서 10년 정도 조용히 지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바나바가 찾아와서 안디옥 교회에 와서 목회를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사울은 바나바의 이끌림을 따라 안디옥 교회에 가서 풍성한 사역을 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한창 부흥할 때 성령께서 사울과 바나바를 성경최초의 선교사로 부르셨습니다.
사울이 선교사가 되어 안디옥 교회를 떠나는 것은 사울 자신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계획이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13:2)
우리는 성령님을 그저 바람, 불, 능력, 치유, 기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에 대한 오해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체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사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고 선도여행을 보내셨습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행13:4)
바울과 바나바를 일차전도여행 보내신 분은 다른 사람이 아닌 성령님이셨습니다.
바울이 일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얼마 있지 않다가 다시 2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그가 자신이 복음을 전한 아시아 지역으로 가려고 하였지만 성령께서 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고 유럽 빌립보로 가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행16:6)
바울이 복음을 유럽에 전하게 된 것은 사울의 생각이나 뜻이 아니라 성령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사울에게 성령께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과 또 성령께서 어디로 가라 말씀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지금도 성령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할 말을 하지 못하게도 하시고 때때로 갈 곳을 가라고도 하십니다.
지난 주에 한 자매와 상담을 하는데 이번 여름 아웃리치 가자고 전화가 오는 순간 갈까 말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냥 가야돼 말씀하시는 것 같아 그냥 순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성령의 음성은 2천 년 전에 초대교회에서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성령님은 우리와 교제하길 원하시고 우리와 동행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