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 20
눅2:22-39
희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시대가 어려우면 희망을 가지고 살기 보다 낙심하고 절망하기 쉽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날마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저는 오늘 큰 희망을 가지고 산 두 사람을 소개하고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은 나이가 100세가 넘은 두 노인입니다.
한 사람은 시므온이라는 자입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들으심입니다.
또 한사람은 안나라는 여선지자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히브리어의 한나를 헬라어로 안나로 불렀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은혜, 은총입니다.
이 두사람은 다 100세가 넘은 노인인데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 당시는 시대적으로 무척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BC587년에 바벨론에게 침공을 받은 뒤 페르시아, 헬라, 로마의 지배를 죽받았습니다. 거의 600년동안 식민지로만 살았습니다.
그리고 식민지로 사는 것도 사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리 어려워도 언제나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 이후 거의 400년동안 그 어떤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 어디를 보아도 희망이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희망이 없고 종교적으로도 희망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긴 하였지만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타락할때로 타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노인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희망이 무엇입니까?
앞일에 대해 기대를 가지는 것입니다.
희망은 가지는 사람의 것입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원래 없던 길에 길이 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길을 가면 그 다음 사람이 또 가게 되고 또 가게 되어 길이 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희망을 가지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 희망이 생깁니다.
희망은 희망을 가지는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오고 절망을 가지는 사람에게는 절망이 옵니다.
이 두 노인은 나이도 백세를 넘어 희망을 노래하기 보다 인생을 포기하며 살아야 할 나이입니다.
안나는 과부가 된지 84년이 지났습니다. 결혼을 스무살에 하였다면 104살이고 스무다섯살에 하였다면 109살입니다.
시므온도 나이가 비슷하였을 것입니다.
두 노인은 다 100세가 넘은 나이에 희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모든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어버린 후 메시야를 기다리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메시야 대망이라는 노래만 부른 자들이 아니라 정말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사는 자는 100세라도 청춘이 되게 합니다.
희망은 오늘을 이기는 힘을 줍니다.
여러분 이 시대가 갈수록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경제가 어렵고 정치가 어둡다 하여도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센프란시스코에 가면 리전어버 라너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 박물관 입구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포로로 잡혀 있었던 한 유대인 의사를 그려 놓은 조각이 있습니다.
독일 나치의 유태인 최대 학살 현장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젊고 어떤 유능한 유태인 의사가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그는 매일 가스실과 실험실로 향하는 동족들의 죽음의 행렬을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낙심을 하고 절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풀려 나리라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노동을 하다가 흙 속에 파묻힌 깨진 유리병 조각을 몰래 숨겨 가지고 돌아와 날마다 면도를 했습니다. 그는 내일을 준비였습니다.
독일군들은 처형자를 고르기 위해 올 때마다 매일 깨끗하게 면도한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결국 그는 나치스가 완전히 패망할 때까지 살아남아 수용소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는 그후 스페인에서 유능한 외과 의사로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수용소의 생활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결코 늦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입니다’
여러분 희망을 가지십시오.
희망을 오늘의 현실을 이기게 하는 힘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