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27
부활을 믿지 않으면 구원 없습니다.
고전15:1-17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가장 이해할수 없는 것이 바로 부활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어찌 죽은 자가 살아납니까?
이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 말이며 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애기며 정상적인 사람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나는 예수를 믿어도 부활은 믿지 않는다는 분이 있습니까? 부활을 의심하는 분 있습니까?
그분은 죄송하지만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에 못간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는 말은 그분이 믿고 있는 예수님은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신을 믿는 다는 것은 미신과 같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죽은 분이 아닙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여 지금 살아 계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15:17)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그 믿음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헛된 믿음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거나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분명한 복음이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기쁜 소식입니다.
돈이 없는 자에게는 돈을 주는 것이 기쁜 소식이고 병든 자에게는 병을 치유해 주는 것이 기쁜 소식이고 빚진 자에게는 빚을 갚아 주는 것이 기쁜소식입니다.
이런 기쁜 소식은 살아 있을 때만 도움이 되지 죽은 이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기쁜 소식은 살아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게 해 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결국에는 영원히 죽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이 죄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가장 큰 기쁜 소식이며 영원한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 천사는 목동들에게 큰 기쁜 소식을 전해 주겠다면서 예수가 태어날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눅2:10)
여기에 큰 이라는 단어는 메가 라는 단어입니다. 즉 메가톤급의 큰 기쁨의 소식을 말합니다.
이 기쁨의 소식은 일시적인 기쁨의 소식이 아닙니다. 온 인류를 살리는 그리고 영원히 지속되는 큰 기쁨을 말합니다.
무엇이 인류에게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하여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잘 읽어보면 복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15:1-4)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AD 50년 경에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이곳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지 20년 정도 지나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이 복음을 받고 그 복음위에 든든히 서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그 복음을 먼저 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러면 먼저 받은 복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살아 난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영접기도를 시킵니다.
그 영접기도에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라는 말을 꼭 하게 합니다.
즉 복음은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에 부활을 뺀다면 심장이 뛰지 않는 시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온갖 수단방법을 다 동원하여 부활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혹시 이중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분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확실한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목사가 된지 26년동안 부활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냥 일년에 한번 부활주일에만 부활에 대한 말씀을 설교하였습니다.
저는 올해 부활에 대한 말씀을 계속 나누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부활의 중요성을 깊이 알지 못하고 그냥 수박 겉핧기식으로 지나가는 것은 사탄의 공격입니다.
십자가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대충 지나갑니다.
우리에게는 십자가나 부활이나 이 둘중에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부활은 십자가만큼 중요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복음을 전할 때 언제나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룟 유다가 죽고 가룟유다 대신 한 사람을 뽑을 때 부활을 전할 사람을 뽑았습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행1:22)
이런 구절들은 초대교회 교인들은 부활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틈만나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들이 사는 성전 안에 들어가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자 제사장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합니다.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행4:2)
베드로와 요한은 40년 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대제사장에게 체포되어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하며 심문하였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행4:1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즉 부활하신 예수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었다고 담대히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베드로는 그냥 조용히 제사장에게 불려 가서 꾸중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며칠 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산헤드린 종교회의를 열고 그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을 세워놓고 심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산헤드린 종교회의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결정한 회의입니다.
이들이 예수를 죽인 살기가 등등한 분위기가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기가 죽지 않고 오히려 베드로가 그들을 꾸짖는 듯한 목소리로 담대하게 말씀을 전합니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왔습니까?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의 마음에 살아 계셨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과 유대 장로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그냥 풀어주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초대교회에 와서 성전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고 또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행4:33)
초대교회 사도들의 설교의 주된 내용은 언제나 부활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