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3.

요20:1-18 (마28:1-10)

현실을 이기는 힘

 

저는 지난 주에 부활을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을 믿지 않으면 천국에 못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제 얘기가 아니고 성경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헛것치면 구원을 못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반드시 믿어야합니다.

부활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예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부활하여 지금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망각한다면 현실의 모든 고난을 이기는 힘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2천년 전에 살았다가 죽은 예수가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어 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분은 천국 못갑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죽은 예수를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현실에 모든 고난을 이기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그분은 지금 살아 계십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여 지금 살아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가 크게 슬픔에 빠진 한 여성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막달라 마라아입니다.

왜 막달라 마리아입니까?

막달라라는 지역에서 태어난 마리아이기 때문입니다.

막달라라는 지역은 갈릴리 호수 북서쪽 5km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염색업과 직물업과 생선절임이 발달한 갈릴리를 대표하는 4대 도시 중의 하나로서 특히 다른 도시보다 도덕적으로 부패한 도시였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초기 사역은 주로 갈릴리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고 회당에서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고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손마른 자를 고치시고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시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고치시고 갈릴리 여러 마을을 다니신 것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눅 8장에 보면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여러 동네에 복음을 전하며 다닐 때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모든 재정을 후원하는 자들이 기록이 됩니다.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눅8:2-3)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재정을 후원하는 여자들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도 있고 정치적 재력가인 헤롯대왕의 청지가 요안나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어떤 여성이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그녀는 과거에 귀신 들린 여성이었습니다. 그냥 귀신에 들린 정도가 아니라 일곱귀신에 들렸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그녀의 상태가 아주 심각하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정신적, 정서적, 육체적으로 모든 것이 다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모든 인격이 다 파괴되어 아무런 비전도 열정도 없이 그냥 죽지 못해 살아가는 지옥같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태양이 떠올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남들이 모두 생각하는 아름다운 결혼은 상상도 할수 없었습니다.

복음서에는 귀신 들린 자들이 마을에서 추방되어 무덤을 오가는 미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막달라 마리아는 돈이 좀 많은 부자집 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병이 치유되자 그녀가 가졌던 돈을 가지고 예수님을 후원하는 일을 행복으로 여기고 예수님 일행을 섬겼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녀가 언제 어디에서 예수님을 만나 치유되었는지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과거에 그녀가 귀신에 들렸을 때는 그녀의 인생자체가 어둠이고 절망이고 저주였는데 예수님을 만나 깊은 흑암에서 빠져 나와 꿈과 비전과 열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자 생각이 달라지고 관심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늘 죽겠다고 말하고 사망의 그늘에 짓눌려 있었던 그녀가 이젠 생기가 넘치고 비전이 넘치고 열정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치유된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다 걸었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예수님을 돕는 일에 제일 앞장을 섰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돕는 여성들을 기록할 때는 언제나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제일먼저 나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녀는 날마다 새로운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들어도 들어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과 사역을 하면 할수록 기쁨이 넘치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기쁨이 가득하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삶의 비전이며 미래며 삶의 이유며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이미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다고 여러번 말씀하셨지만 그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요한을 제외한 다른 모든 제자들은 다 도망가버렸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끝까지 예수님 곁에 있었던 자가 누구입니까?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마27:56)

또 두 명 즉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요한 이렇게 5명이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직접 보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무런 힘도 없이 죽으심에 너무나 놀라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금요일 아침 9시에 매달린 예수님은 오후 3시에 죽으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 죽었습니다.

물위로 걸으시는 발에 못이 박혔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손에 못이 박혔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만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달라 마리아가 다시 꿈을 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 막다라 마리아가 다시 열정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곧 시작된다는 이유로 급히 예수님의 시신을 치우길 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는 안식일로 지키기 때문에 저녁이 되기 전에 예수님의 시신을 치우길 원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급히 아리마대요셉의 무덤에 안치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생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다는 말을 여러번 하였으나 제자들은 믿지 않았는데 대제사장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오히려 그 말을 믿고 예수님의 부활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신이 묻혀 있는 무덤에 로마 병정을 세워두길 원했고 빌라도의 인장을 찍어 두길 원했습니다.

그래야 아무도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가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들어가 있는 무덤 앞에는 1톤 정도 되는 돌문이 막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날에는 아무도 일을 하거나 멀리 움직이지 않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집으로 돌아가 향유와 향품을 준비하였습니다.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눅23:56)

안식일이 지나고 안식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묻혀 있는 무덤을 향해 갔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요20:1)

여러분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가 이른 새벽에 예수님이 묻힌 무덤에 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병이 낫고자 함입니까?

돈을 벌기 위함입니까?

성공하기 위함입니까?

그녀가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간 이유는 예수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자들과 막달라 마리아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늘 예수님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기를 원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세상적인 성공을 원했습니다.

예수님 곁에 있으면 한자리 할 줄 알았습니다.

불과 1주일 전에만 해도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예수님이 왕이 될 줄 알고 신이 났습니다.

그들은 최후의 만찬 때 누가 예수님 오른편에 앉을 것인가를 두고 다툰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무슨 이익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자 다 버리고 도망가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을 통해 아무런 유익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녀는 댓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향한 댓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에는 언제나 큰 은혜가 있습니다.

여러분 돌려받지 않는 순진한 헌신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큰 은혜가 부어집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 무덤에 향품을 놓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간들 1톤이나 되는 돌을 어떻게 열어”

“우리가 그곳에 가면 로마 군인들이 체포해 가지 않겠어”

막달라 마리아는 이성적인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아무런 계산하지 않는 대책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이 계시는 무덤을 향해 갈 때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녀가 산길을 걸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마28:2-4)

이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천사가 돌을 굴려 낸 이유가 설명 되어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 돌문을 열었습니까?

바로 막달라 마다아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몸입니다.

제자들이 방에 문을 걸고 숨어 있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쑥 나타나셔서 또 쑥 사라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 문을 여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천사는 돌을 굴려 내었습니까?

천사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무덤 속을 보라고 말하였습니다.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28:6)

막달라 마리아는 빈 무덤에서 급히 나와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서 빈무덤 소식을 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