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일 설교 나누기

주제: 축복의 능력 (벧전 3:8-9)

      원래 사람은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사랑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 동산을 경작하는 임무를 주셨습니다. 여기에 경작한다는 말은 땅에 생기를 불어 넣어 곡식을 수확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살리는 자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아담과 하와 때문에 복을 받습니다. 그들이 복의 근원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죄를 범하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모든 것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신 축복의 사명은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을 통하여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으며,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주어졌습니다. 이런 사명에 대하여 초대교회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축복을 비는 자로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축복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축복하는 일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이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축복을 선택하십시오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죄가 넘치는 곳이기에 불공평할 때가 많고 부당하게 취급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때 화를 내고 내가 받은 것을 되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성경은 화를 내지 말고 그를 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저주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는 살다보면 정말 화가 나는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분노가 나고 저주가 막 나오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우리 입술로 저주를 말하지 말고 저주를 하나님께 맡겨야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12:19) 왜 그렇습니까? 내가 원수를 갚으려다가는 내가 다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원수는 하나님이 대신 갚아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제: 축복의 능력 (벧전 3:8-9)

원래 사람은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사랑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 동산을 경작하는 임무를 주셨습니다. 여기에 경작한다는 말은 땅에 생기를 불어 넣어 곡식을 수확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살리는 자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아담과 하와 때문에 복을 받습니다. 그들이 복의 근원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죄를 범하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모든 것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신 축복의 사명은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을 통하여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으며,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주어졌습니다. 이런 사명에 대하여 초대교회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축복을 비는 자로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축복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축복하는 일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이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축복을 선택하십시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죄가 넘치는 곳이기에 불공평할 때가 많고 부당하게 취급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때 화를 내고 내가 받은 것을 되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성경은 화를 내지 말고 그를 축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축복보다 저주를 하길 좋아합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아내인 하와를 축복하기보다 이 여자 때문이라며비난하고 저주하였습니다. 또 아담의 피를 물려받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현재의 상황에 대해 남을 탓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일쑤입니다. 말세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세상은 더 이기적으로 변해서 서로를 비난하고 화를 내고 분노하고 저주하길 좋아합니다. 대중매체는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을 전하고 온갖 저주를 토해 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입에서 저주가 나오도록 부추깁니다. 그럴수록 사탄은 더 큰 힘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서로 저주를 해야 세상이 더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세상에 모셔 들이기위해서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저주든지 축복이든지 우리가 평소에 하는 행동이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진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축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둘째, 저주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는 살다보면 정말 화가 나는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분노가 나고 저주가 막 나오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우리 입술로 저주를 말하지 말고 저주를 하나님께 맡겨야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12:19) 왜 그렇습니까? 내가 원수를 갚으려다가는 내가 다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원수는 하나님이 대신 갚아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우리를 학대하는 자를 하나님께 맡긴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향해 최고의 길을 열어 주시고 엄청난 축복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을 때, 요셉은 보디발과 보디발의 부인을 저주하지 않고 그냥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감옥 생활을 다 아셨고 그에게 최고의 사람을 만나게 하셨으며, 순식간에 그를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보디발 위에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모든 억울함을 다 갚아 주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의 저주, 질병의 저주, 두려움의 저주, 분노의 저주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모든 저주를 남 탓으로 돌리며 입술에 늘 시기, 질투, 비난, 분노를 하며 저주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저주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환경과 상관없이 축복을 말하고 축복을 풀어 놓는 자로 살아야합니다. 예수님을 저주했던 우리를 그분은 십자가로 축복하셨습니다. 그분의 축복 앞에 이제 우리의 선택만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