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세기 20장에는 아브라함에게 일어나는 두 가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는 아브라함의 처절한 실패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거기서 네게브 딸 그랄에 갔습니다.

300명이 넘는 거대한 부족을 이끌고 그랄 족이 있는 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은 나이 89세가 되어도 여전히 미모가 뛰어난 사라에 대한 염려가 많았습니다. 그는 분명 사라를 자기 부인이라고 말을 하면 그랄 왕이 자신을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 갈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부인에게 아내라고 말하지 말고 누이라고 말하자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랄 왕이 사라를 보고 왕궁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있다가 기근이 오자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애굽의 바로 왕에게 바친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24년 전에 한번 실수한 반복되는 죄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이 똑같은 죄를 반복하여 또 지을 수가 있습니까? 그날 밤에 아비멜렉 왕에세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셨습니다. 아비멜렉은 자신은 아무 죄도 없는 데 죽이십니까 하고 항변하였습니다. 내가 너가 범죄하지 않았음을 안다 그래서 이렇게 너에게 나타난 것이니 이제 그 사람의 여자를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 니라 그가 너를 위해 기도하여 너를 살려 낼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와 너의 집 안에 있는 자들이 다 죽을 것이다. “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창20:8)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하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가 아버지는 같으나 어머니가 같지 않는 배 다른 누이라고 하며 거짓말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지금 우리 믿는 자들의 대표주자인 아브라함을 내 세우면서 고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만 앞세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안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창20:13) 여기에 반전이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고백할 때부터 새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은 한번도 이 죄를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숨기는 자에겐 심판을 하시지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자에겐 은혜를 베푸십니다.

 

두 번째는 아브라함의 회복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과 함께 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일로 아브라함은 사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함을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잘 해서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했는데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심에 대해 눈물이 흘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가 선합니다. 누가 올바릅니까? 누가 좋은 사람입니까? 당연히 아비멜렉이 좋은 사람이지요? 그런데 성경은 죄를 지은 아브라함이 선하게 살아가는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기도하지 아비멜렉에 있는 모든 병이 치유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네 말이 안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베푸시는 과분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브라함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결정하셨습니다. 불공평하다고요? 네 불공평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에게 선대하시고 남들이 볼 때 불공평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런 과분한 은혜를 베푸십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실수했지만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시고 그를 통해 다윗이 태어나고 그를 통해 메시야 예수가 태어나게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후회하심이 없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실수를 하면 사탄은 하나님에게 고발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실수를 했다고… 지은 죄에 대해 심판을 해야한다고… 그때 하나님은 알아, 알고 있어, 그래도 건드리지 마 내 아들이야 하나님 저런 자가 선지자입니까? 말이 됩니까? 그래 알아 그래도 내가 그를 선지자로 쓸거야.

하나님의 은혜는 날마다 과분하게 부어집니다. “오늘도 최고의 은혜는 부어집니다.” 사람은 책망보다 과분한 은혜가 사람을 바꾸어 놓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저지런 실수보다 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