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노아의 삶을 형통한 인생을 살게 하는 비밀인 존중에 대해 나누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인생을 통해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력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노아는 대 홍수이후 방주에서 나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는 먼저 방주에서 나오자 마자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예배를 받으신 후 무지개를 보여 주시고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아담 이후 다시 새롭게 인류를 시작한 자입니다.
여러분 새롭게 시작한다고 모든 것이 다 잘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자는 정말 마음을 바로 지켜야합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고 의로운 자였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였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창9:18-20)
농사는 아담이 처음 시작하였던 일입니다.
노아는 두 번째로 인류를 시작한 자로 다시 농사를 지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 심판받는 땅이었지만 노아가 농사를 짓고 포도나무를 심었을 때 많은 포도가 수확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포도는 언제나 축복과 기쁨의 상징이었습니다.
축복을 축복으로 잘 관리해야합니다.
축복을 축복으로 잘 관리하지 못하면 그 축복이 오히려 저주가 됩니다.
노아는 많은 포도가 수확이 되었을 때 그것을 포도주로 만들어 마셨습니다.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창9:21)
어떤 분은 노아가 인류최초의 포도주를 만든 자라고도 말하는데 이것은 조금 무리가 되는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가인의 후예들이 이미 도시생활을 하면서 향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마지막날은 노아의 때와 같이 먹고 마시고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노아 이전에도 이미 가인의 후예들은 술취함이 있었습니다.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으나 그는 포도주를 먹고 취하였습니다.
여기에 ‘취한다’는 ‘쉬카르’라는 단어는 ‘잔뜩 마신다.’라는 뜻입니다.
노아는 포도주를 잔뜩 마시고 취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노아는 왜 술이 취하도록 마셨습니까?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노아는 대 홍수 이후 가족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에 대해 외로웠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술에 취하면 안됩니다.
대신 우리는 성령에 취해야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5:18)
여러분 외롭습니까? 그냉 괜스리 외로움이 밀려 옵니까? 그때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시고 성령에 취하시기 바랍니다.
노아가 술에 취해 하체를 벗고 누워 있는 것은 방종이며 노아의 실수입니다.
아들들이 볼 때 아버지의 이런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 아버지의 실수를 보게 될 때 자녀들이 어떻게 행동해야합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두 부류의 아들들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의 존경을 빼앗는 자입니다.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창9:22)
노아의 아들은 샘, 함, 야벳 세 명입니다.
함은 노아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술을 먹고 하체를 벗은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에 ‘보고’ 라는 말은 ‘와야르’라는 히브리어인데 이는 그냥 우연히 본 것이 아니라 흥미를 갖고 주목해서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두 형제들에게 알릴 때 ‘알리매’ 라는 말은 ‘와야게드’는 누설하다 고발하다 보고하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본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함은 아버지의 실수를 보고 즐기고 밖에 나가서 신이 나서 떠벌리고 있는 것입니다.
함에게는 아버지를 향한 아무런 존경도 사랑함도 없습니다.
함은 아버지를 향한 의도적인 악의와 멸시가 들어 있습니다.
함은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이 없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실수를 형과 동생에게 알렸습니다. 이것은 부모의 실수를 부각시키고 부모의 존경을 빼앗는 도둑질입니다.
여러분 남의 실수를 떠벌리고 다니는 천박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여기서 우린 왜 함이 아버지의 실수를 보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함은 둘째입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첫째 장남이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부모의 재산을 많이 물려받습니다.
성경에 기록은 되어 있지 않지만 함은 노아가 평소에 샘을 좋아하고 재산을 많이 물려받는 것에 대한 삐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셋째 야벳은 왜 삐지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 5,2, 1 달란트 비유가 나오는데 1달란트를 받은 자가 주인에게 삐져서 1달란트 그대로 가져 왔습니다. 2달트도 5달란트에 비하면 삐질수 있지만 그는 주인에게 삐지지 않고 배로 남겼습니다.
마찬가지로 노아의 아들들 중에 셋째는 삐지지 않는데 둘째인 함만 삐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다면 부모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가지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는 무조건 부모를 존중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존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신5:16)
‘공경하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보드’인데 이는 무겁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부모를 우습게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27:16)
여기에 ‘경홀히’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바자’인데 이는 ‘가볍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일로 성경에 저주를 받는 자가 기록된 두 번째 사건입니다.
첫 번째는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저주를 받게 되고 두 번째는 지금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 무슨 이유에서든지 부모를 존중하십시오.
그러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겐 금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의 실수를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였은즉 그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