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8

내 죄를 대신하여 죽어 주신 은혜

요18:37-40, 요19:14-15

 

저는 오늘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한 사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라바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27:16에서는 유명한 죄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마27:16)

마가복음15:7에서는 민란을 일으킨 주동자이며 살인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막15:7)

누가복음에서는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을 하고 감옥에 갇힌 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눅23:19)

요한복음18:40절에서는 강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요18:40)

바라바는 4복음서에 다 기록된 자입니다.

사복음서에 모두 다 기록된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오병이어 기적,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입성하신 사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빌라도재판, 십자가 사건, 부활 정도입니다.

사복음서에 다 나오는 사건은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인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이나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들은 4복음서에 다 나오는 것이 아니고 요한복음에만 나옵니다.

그런데 바라바의 이름을 4복음서가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바라바의 이름은 그냥 지나쳐 갈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라바는 단순한 강도가 아니라 민란을 꾸미고 폭동을 일으킨 자이며 살인자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바라바를 로마에 투항하는 열심당원 중의 한 사람으로 봅니다.

그는 폭동주동자로 로마 군인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가 그냥 살인자가 아니라 로마에 대한 반역을 일으킨 유명한 주동자이기에 그는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로마는 로마에 반역을 하는 것에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그런 자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않고 다 십자가형의 사형을 시켜 로마에 반역을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바라바는 이미 사형수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라바는 로마군인들이 폭동 주동자를 어떻게 사형시키는 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십자가형입니다.

양손과 양발에 망치로 못을 박아 과다 출혈로 죽게 하는 처절한 사형입니다.

그의 죽음의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날마다 자신이 죽을 십자가 형벌을 마음으로 그려 봅니다.

그는 잠자다가도 망치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리 앉았습니다.

드디어 여러 명의 로마 군인들이 바라바가 갇힌 감옥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순간 죽음의 공포가 그를 덮었고 그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음을 알았습니다.

감옥 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로마 군인들은 그의 손에 묶였던 수갑을 풀어 주고 발에 있는 족쇄도 풀어 주었습니다.

바라바는 어리둥절하였습니다.

로마 군인 중에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석방이다. 이제 이곳을 나가도 좋다.”

바라바는 도무지 자신이 자유인이 되어 풀려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저주저하고 있는 바라바에게 로마 군인이 말했습니다.

“네가 매달릴 십자가에 너를 대신해서 예수가 매달리게 되었다.”

로마군인들은 문을 열어 놓고 가버렸습니다.

그의 인생에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형수에서 자유인으로 풀려 난 것입니다.

바라바는 꿈인지 생시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라바의 인생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캄캄한 절망의 동굴에 갇혀 있는 그에게 환한 빛이 들어온 것입니다.

바라바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감옥을 나와 조심조심 걸어 나가는데 아무도 그를 붙잡는 자도 없었고 따라오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는 정말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아. 내가 살았구나, 내가 살았어, 풀쩍 풀쩍 뛰었습니다.

그는 기쁨과 함께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이 밀려왔습니다.

바라바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죽어야 할 사형수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가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예수가 누구인지 궁금하였습니다.

바라바가 풀려난 이후의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유대 전승에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바라바는 예수가 누구기에 자신을 대신해 십자가에 죽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의 눈앞에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가고 있었습니다.

군중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니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었습니다.

곧 예수는 벌거벗김을 당하고 십자가에 눕혀져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혔습니다.

바라바는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알지 못하니이다.”

바라바는 용서라는 단어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늘 로마인들에 대한 분노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십자가에 못을 박는 로마 군인들을 용서해 달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더 더욱 예수가 누구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바라바는 예수의 십자가형을 주도하는 백부장이 “예수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바라바는 예수를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임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왜 4복음서는 바라바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까?

그는 그냥 단순히 살인자였는데 운이 좋아서 살아난 자가 아닙니다.

바라바가 주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라바를 통해 세 가지 메시지를 살펴보길 원합니다.

첫 번째는 내가 바라바입니다.

‘바라바’라는 말은 아람어로 ‘바르’와 ‘아바’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바르는 아들, 아바는 아버지라는 뜻으로 바라바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에 바르라는 단어는 많이 등장합니다.

바디메오는 디메오의 아들이라는 말이고, 바돌레매라는 말은 돌래매의 아들이라는 말이고 바예수는 예수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바라바는 평범한 아버지의 아들로 유대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율법도 공부한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십계명 중의 하나인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자입니다.

바라바가 평생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하여도 살인이라는 계명을 어겼기에 그는 율법을 어긴 자입니다.

야고보서에는 율법을 하나라도 지키지 않는 자는 모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가 되어 심판을 받고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기록합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약2:10-12)

이 기준을 따르면 바라바는 살인을 하였기에 명백하게 율법을 다 범한 자가 되어 심판을 받아야합니다.

그런데 바라바만 율법을 범한 자입니까?

우리도 누군가의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율법을 범한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의 잣대로 우리를 처리한다면 우리는 모두 저주를 받아야할 자입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3:10)

성경에는 수많은 율법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무엇을 하라는 것과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율법 중에 한 가지만 어겨도 우리는 저주를 받아 마땅한 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