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11
생수의 은혜 오늘 설교는 꼭 3번 이상 들으시기 바랍니다.
겔47:1-12
어느 날 한 청년이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장비를 준비하였고 무엇보다 중요한 식수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식수가 바닥나 버렸습니다.
그는 기진하여 쓰러졌고 마침내 실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참 후 그는 눈을 떠보니 눈앞에 야자수가 보였고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렸습니다.
그는 이제 죽을 때가 되어 환각이 보이는구나 하고 애써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자 귓가에 물소리와 새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 이제 정말 내가 죽게 되는구나 하고 또다시 소리에 귀를 닫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사막의 한 베두인이 어린 아들과 함께 오아시스에 물을 길으러 왔다가 물가에서 입술이 타들어가 죽은 청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이상했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은 왜 물가에서 목말라 죽었을까요?”
그러자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얘야! 여기 죽어있는 젊은이가 바로 현대인이란다.”
이 비유는 독일 신학자 ‘요르그 찡크’가 꼬집어 말한 현대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오이시스 물가 곁에서 목말라 죽은 현대인” 정말 그럴 듯한 비유입니다.
현대인들은 사실 과거에 비하면 물질적으로 훨씬 풍부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먹을 생수가 없어 목이 말라 죽어가는 사막에 던져진 자처럼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목마른 인생이 아니라 날마다 생수를 마시는 풍성한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보게 되는 에스겔서 47장은 에스겔 40장에서 죽 연결되는 환상입니다.
40장1, 3절을 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겔40:1)
에스겔 37장에서 에스겔이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은 그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온 지 5년째 본 것이고 지금 성전에서 생수가 나오는 환상은 마른 뼈 환상을 본지 20년이 지나 그가 포로로 잡혀 온지 25년째 다시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셔서 성전을 보게 하십니다.
“나를 데리시고 거기에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 있더니” (겔40:3)
여기에 측량하는 장대를 지닌 어떤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분은 앞으로 신약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에스겔에게 성전의 동서남북, 안뜰, 성소, 지성소, 제사장의 방, 성전 주변을 보여 주시고 이제 에스겔 47장에서는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보여 주십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겔47:1-2)
12절에 보면 물이 흘러나옴의 시작이 성전 안에 있는 성소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겔47:12)
에스겔은 지금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한지 25년이 지났으니 그의 나이도 이제 50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20년 전에 본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을 보고 희망을 가졌는데 그 환상도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자 또다시 무력해졌습니다.
그는 긴 포로 생활에 그의 마음은 메마른 사막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절망을 이기고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 사막과 같은 그의 인생이 살아나겠습니까?
첫번째로 성령의 생수를 마셔야합니다.
지금 에스겔에게 보여 주시는 생수는 성전의 성소에서 흘러나옵니다.
2절에 “스며 나오더라.”는 말은 원어에는 “솟아 나온다.”는 말입니다.
1-2절을 자세히 보면 성소에서 물이 나오더니 제단에서 흘러내리고 바깥문쪽에서는 솟아 나왔습니다. 물이 점점 많이 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물은 점점 더 많아져서 예루살렘 밑으로 내려와 여리고성 주변의 사막을 다 적시고 그리고 드디어 사해 바다까지 다 살려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엄청난 생수가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생수의 근원은 성전이었습니다.
에스겔이 환상으로 본 성전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은 솔로몬 성전입니다. 그 솔로몬의 성전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침공할 때 다 불타버렸습니다.
신약에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왕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헤롯성전을 지었습니다. 이 성전또한 로마가 침공할 때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은 헤롯의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 눈에 보이는 헤롯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새로운 성전을 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2:19)
예수님께서 성전을 사흘만에 짓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의 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2:21)
다시 말하면 에스겔이 환상으로 본 성전은 바로 앞으로 600년 후에 오실 예수님의 몸을 말합니다.
에스겔이 성전에서 생수가 흘러 나와 사막 같은 들판을 살리고 죽은 사해 바다를 살리는 것은 바로 앞으로 오실 예수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본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에서 나오는 생수는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이 보내 주시는 생수라고 말씀하십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7-39)
에스겔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보고 마음이 뛰었습니다.
여러분 팔레스틴 땅에 살아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물은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그 땅은 1년이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두 번밖에 비가 오지 않기에 물에 대한 애착이 아주 강합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 애굽하여 가장 큰 고통은 물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난 지 3일만에 물이 없어 목이 마르자 불평불만하기 시작하였고 호렙산 근처에 도착하여 물이 없자 돌을 쳐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호렙산에 있는 반석을 쳐서 물이 터져 나와 약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고 마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반석이 바로 신약의 예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10:4)
예수님이 생수를 주시는 반석이십니다.
예수님의 몸에서 나오는 생수는 성령의 생수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몸은 70-80%가 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생성되는 최초의 시기 수정란은 99%가 물입니다.
태어났을 때는 90%가 물이고 어른이 되면 70-80%로 죽을 때는 50%가 물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물로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성령의 생수를 마셔야합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
여러분 사람은 영이 살아야 육이 삽니다.
여러분 사람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아무리 좋은 곳을 보아도,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만족되지 않습니다.
영이 살아야 진짜 삽니다. 우리의 영이 살려면 탐욕의 영, 거짓의 영, 분노의 영, 음란의 영, 미움의 영을 거절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해야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이 목마르지 않는 참만족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성령의 생수를 마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로 성령의 생수가 강이 되어야합니다.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겔47:3-5)
성전의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점점 불어납니다.
처음에는 발목정도에서 무릎 정도로 그 다음에는 허리 정도로 차고 마지막에는 내 힘으로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의 4단계를 보여 줍니다.
첫 번째 물이 발목에 차는 단계입니다.
물이 발목에 차는 단계는 예수를 구세주로 주인으로 모시면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이런 성령의 물은 최소한의 단계입니다.
발목정도 되는 물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물이 무릎에 차는 단계입니다.
물이 발목정도나 무릎정도는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생수의 양의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이 무릎정도 차려면 무릎으로 기도생활을 해야합니다.
기도 없이는 절대로 성령충만 하지 않습니다.
나는 교회는 오래 다녔는데 기도는 별로 하지 않는다면 다시 기도에 불을 붙여야합니다.
기도하면 성령의 생수가 차 오릅니다.
기도를 해도 여전히 내 생각이 앞서고 성령과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사는 자는 무릎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평생 교회를 다녀도 발목수준이나 무릎수준에 멈추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성령의 생수는 점점 많아지고 점점 깊어져야합니다.
처음에는 조금씩 흐르다가 점점 세차게 흘러야합니다.
세 번째는 물이 허리 정도 차는 단계입니다.
허리는 사람의 중심입니다.
중심이 잡힌 자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중심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성령이 허리 깊이 정도 차면 내 생각보다 성령에 이끌림을 받기 시작하고 능력이 나타납니다.
죄를 지으면 굉장히 불편해 지고 성령에 예민해 집니다. 말씀이 꿀보다 달고 기도가 즐겁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물이 거대한 강이 되는 단계입니다.
강물에 잠기면 내 마음대로 다닐 수 없습니다. 강물에 끌려 가야합니다.
이것은 내가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 이끌려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전적으로 인도함을 받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기도를 해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성령의 생수가 강이 되는 단계는 우리 몸 안에 있는 모든 세포 세포 하나하나가 성령의 생수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런 불평도 아무런 의심도 없습니다.
또 이 단계는 모든 신경세포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귀를 기울이는 단계를 말합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성령의 생수가 강이 되는 것에 대한 사모함이 생겼습니다.
지난 주 새벽예배 때 출애굽기를 묵상하면서 태어난 지 3달된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를 태운 그 갈대상자가 원어로 테바입니다. 이 갈대상자와 똑같은 단어가 또 노아의 방주입니다.
테바라는 단어는 동력이 없는 배를 말합니다.
모세를 실은 갈대상자나 노아의 방주나 강이 인도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모세를 실은 갈대상자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공주 앞으로 인도하였고 노아의 방주는 아라랏산에 멈추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을 내가 발부둥치고 애쓰고 긴장하며 살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강에 이끌림을 받으며 살아야합니다. 거기에 평안이 있고 기적이 있고 축제가 있습니다.
성령께 이끌림을 받는 것을 생수의 은혜라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 모두가 생수의 강에 잠기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생수가 점점 더 깊어져야합니다. 생수의 한 모금이 아니라 생수가 강이 되어야합니다.
기도가 깊어 져야합니다. 방언도 하시기 바랍니다. 치유의 기적도 일어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