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때때로 우리의 현실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높은 콘크리트 벽을 만난 것처럼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자는 낙심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떡이 없는 부족을 바라보고 낙심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시는 사건을 살펴보길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보게 되는 칠병이어 기적은 오병이어 기적과는 전혀 다른 기적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은 4복음서 모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 인생에 가장 큰 인기를 가지게 하였던 유명한 기적입니다.
반면 칠병이어 기적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기적입니다.
이제 칠병이어 기적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막8:1)
여기에 ‘또’ 라는 단어는 ‘다시’ 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마가복음 6장에 나오는 불과 며칠 전에 오병이어로 큰 기적을 경험한 무리들을 기억하면서 쓴 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은 갈릴리 지역의 벳세다 언덕에서 일어난 것이고 칠병이어 기적은 막7:31절에 갈릴리 바다 동북편 이방 땅인 데가볼리 지역에서 일어난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사흘 동안이나 예수님의 설교를 듣는 자들의 배가 고픈 것을 아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2)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막8:2-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이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그러나)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막8:5)
원어에는 일곱이라는 말 앞에 ‘그러나’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제자들이 이 7개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불가능을 바라봅니다. 제자들은 부족한 것만 바라봅니다. 그들은 불과 며칠전에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인 사건을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을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개를 축사하고 나누어주었습니다.
또 누군가 생선 두 마리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은 동일하게 축사하시고 무리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6)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막8:6-7)
그랬더니 배불리 먹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막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