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3.6.

예수를 구세주에서 주로 모십시오.

마22:41-46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인 레오나르다빈치는 유명한 화가이며 조각가이며 건축가이고 뛰어난 예술가입니다. 그는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를 그린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제가 5년 전에 밀라노에서 최후의 만찬을 보고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였습니다.

최후의 만찬 그림은 가로 9m10cm, 세로 4m20cm 되는 큰 그림입니다. 아예 성당 정면을  다 차지하였습니다. 이 그림을 완성하는데는 꼬박 4년이 걸렸습니다.

그가 43세에 그림의 초본을 다 완성하고 친구에게 보여 주면서 소감을 물었습니다.

다빈치의 친구는 예수님 오른손에 들려 있는 잔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사실적이라고 하며 진짜 컵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빈치는 붓을 들어 컵을 지워버렸습니다.

친구가 당황하면서 아니 왜 컵을 없애느냐고 묻자 다빈치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야하네”

 

여러분 우리 인생이 끝나는 날 무엇이 남겠습니까?

내 사진, 내 이력, 내 집, 내 이름…

다 허상일 뿐입니다.

진짜 남는 것은 오로지 주님과 함께 한 것 뿐입니다.

여러분의 나이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공자는 나이 40이 되면 아무런 유혹을 받지 않는 불혹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나이 40이 되면 세상의 유혹을 받지 않고 인생을 진지하게 살려고 합니다.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일찍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분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의 전부임을 알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면서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큰 은혜가 넘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를 거의 마치고 마태복음 21장에서 주일날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을 입성하셨고 월요일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향해 “너희들이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이 일로 성전이 발칵 뒤집혀졌습니다.

화요일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가시다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음을 보시고 그 나무를 저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 말씀을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과 유대 장로들이 예수님에게 다가와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하며 예수님을 공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 비유를 하시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암시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이미 예수님 사역 처음부터 계속 있어온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요단강물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때 하늘에서 들려 온 소리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3:17)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바로 광야로 가서 40일 금식을 하십니다. 그때 사탄이 나타나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사탄은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냐 라는 말로 공격합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4:3)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4:6)

 

하루는 제자들이 게네사렛 호수를 건너갈 때 큰 풍랑을 만나 고통당할 때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잠케 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마14:33)

이런 사건들은 예수님이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백성들 사이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문은 급속히 퍼져 갔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명한 대답을 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6)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것은 그냥 입술의 고백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였습니다.

마가는 마가복음 1장 1절에서부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1:1)

막1:13절에 보면 재미있는 기록이 나옵니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1:13)

예수님께서 시험을 이기시고 들짐승들과 함께 있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이세상의 모든 것을 회복하고 다시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누렸던 그 특권을 찾아주시는 분으로 암시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오실 것을 말씀합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눅1:32-33)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기록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5)

요11장에서는 마르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11:27)

마르다의 고백은 그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신앙고백입니다.

아직 나사로가 살아 난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그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가 시작된 이후로 계속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단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입니다.

지금으로 표현하면 팔레스틴이라는 땅에 청년 예수가 나타나서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병든 자를 고치고 놀라운 메시지를 전하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드롬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3년 반 동안 그 메시지가 온 팔레스틴 땅 전체를 흔들었습니다.

드디어 그 청년 예수가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까지 들어오니 온성이 떠들썩하고 호산나 호산나 외치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며 환호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붙잡아 죽이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송곳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을 하시고 오히려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거침없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세금을 로마 황제에게 내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내라고 답변하였습니다.

당황한 유대종교 지도자들 중에 제사장 그룹인 사두개인들은 또 다시 부활에 대한 질문을 하였고 바리새인들은 율법중에 무슨 율법이 가장 크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은 우리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라고 대답하시고 율법중에 가장 큰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시고 그다음 오히려 바리새인들을 향해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마22:41-42)

지금 예수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다 대답을 하신 예수님에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질문에 답을 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고 물었을 때 성경학자들답게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사실 이것은 유대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에게서 납니다.

이것은 성경의 예언입니다.

그리스도는 헬라말이고 메시야는 히브리말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에서부터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삼하7:12-13)

여기의 네 몸은 다윗이고 네 몸에서 날씨는 메시야를 말합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사11:1-2)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를 말합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나는 한 싹이 바로 다윗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렘23:5)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셀라) (시89:3-4)

 

예수님은 그리스도, 메시야가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날 것을 잘 대답한 바리새인들에게 또다시 질문을 하십니다.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마22:43-44)

여기에 주께서 내 주께 라는 주는 서로 다른 주입니다 .

앞에 주는 하나님이시고 뒤에 주는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은 시편을 보면 더 정확해집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시편을 다 암송하고 계셨습니다.

방금 이 구절은 시편 110편 1절을 옮긴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시110:1)

이 말의 뜻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짓밟을 때까지 메시야를 권능의 자리에 있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시편을 다 꽤 뚫고 계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탄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더 깊이 파고 들어갑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마22:45)

무슨 말입니까?

다윗이 자신에게서 태어나는 그리스도 즉 메사야를 향해 주님이라고 칭하였으니 어찌 자기의 후손을 향해 주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에게서 태어나는 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다윗이 주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마22:46)

지금 이런 논쟁이 있는 장소가 바로 바리새인들의 집이며 본거지며 안식처인 성전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똑 같은 말씀이 마가복음에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막12장에서는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이 한마디도 못하자 백성들이 웃었다고 기록합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막1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