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15

존중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왕하2:1-12

 

경영학을 전공한 대학생들의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집중해서 문제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마지막 문제에 이를 즈음에 긴장감으로 팽팽하던 강의실의 분위기가 갑자기 흔들렸습니다. 학생들이 문제에 대한 불평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용기 있는 한 학생이 손을 들고 교수님께 질문했습니다.

“교수님, 마지막 문제는 장난으로 내신 거지요? 보너스 문제인가요?”

다른 학생이 이어서 질문했습니다.

“설마, 이 문제에도 점수를 주시나요?”

“그럼, 물론이지” 교수님은 짧고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마지막 문제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수업을 했던 이 강의실을 청소하는 아저씨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답안지를 걷은 후에, 교수님께서는 문제를 낸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자네들이 이제 졸업을 해서 사회에 나가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야.

자네들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자리에 서든지…

삶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존중해야 하네.

특별히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을 더 존중하게.

내가 자네들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지식은 바로 이것 일세”

 

사람이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내가 존중을 받는 것 모두가 중요합니다.

오늘날 시대를 탈권위의 세대라고 말하고 자기만족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오늘날은 존중이라는 단어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가 되면 자기 자신만 사랑하고 부모를 거역하게 된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3:2)

오늘날은 부모를 존중하기보다 부모를 원망하는 자가 많아졌습니다.

스승을 존중하기보다 스승을 비난하는 학생이 많아졌습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 자는 자신이 부모가 되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자녀를 낳게 될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며 뒷바라지 하였지만 자녀들이 부모를 존중하기는커녕 불평하고 원망할 때 허무와 허탈감을 느끼고 부모의 자리를 던져버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먹고 사는 것은 과거보다 더 나아졌는데 삶은 더 공허하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존경과 존중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주위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면 내 쪽에서 먼저 존중하여야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12)

 

존중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티미’인데 이는 ‘중요시한다,’ ‘귀중히 여긴다,’ ‘진가를 인정한다’라는 뜻입니다.

존중의 반대어는 헬라어로 ‘아티미아’ 인데 이는 ‘멸시한다’ ‘무시한다,’ ‘천하게 취급한다’는 말입니다.

이 존중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존중은 권위를 인정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권위는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존중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롬13:1)

 

부모를 존중한다는 것은 부모라는 권위를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스승을 존중한다는 것은 스승이라는 권위를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내 곁에 주신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존중의 중요성을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사렛 동네에서 자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가는 곳마다 엄청난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딱 한곳에서는 아무런 기적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그곳이 바로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입니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막6:5-6)

예수님은 그 어떤 질병이든지 다 고치셨습니다.

아무리 오래된 질병이라고 하여도, 아무리 불치의 병이라고 하여도 순식간에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권능을 행하시지 않으신 것이 아니고 권능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할 수 없는 이유를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막6:4)

예수님은 어디를 가시든지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에서만 존경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을 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행할 수 없습니다. 아니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아집니다.

성경은 존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사는 동안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자들을 존중하며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애써서 소중히 만든 것을 누군가가 귀히 여겨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내가 1년내내 만든 작품을 사람들이 무시하고 짓밟으면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디자인하시고 직접 생기를 넣어 만든 사람을 주위 사람들이 무시하고 천하게 여기고 함부로 다루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주위에 있는 자들을 존중하여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