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11

창12장1-5절

복의 근원이 되십시오.

 

사람은 자기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사는가는 정말 중요합니다.

감옥에 수감된 자들중 75%는 그들의 부모가 어릴 때 너는 감옥에나 갈거야 하는 말을 듣고 자랐다는 연구보고가 있습니다.

만약 감옥에 있는 이들에게 누군가가 너는 의사가 될거야, 너는 훌륭한 선생님이 될거야, 너는 훌륭한 스포츠 선수가 될거야 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면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어떻게 평범한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었는지 살펴보길 원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12:1-3)

 

하나님은 아버지가 죽고 낙심에 빠진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라는 희망을 던져 주셨습니다.

이 희망을 던지는 음성을 통해 아브라함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는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이 말씀을 보기 전에 먼저 창11장에서 아브라함의 가정배경을 좀 살펴보길 원합니다.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창11:26)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창11:27-28)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데라입니다. 그는 나이 70세부터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잠시 나이를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데라가 70세에 세 아들을 낳고 205세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데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입니다. 만약 아브람이 첫 아들이면 숫자적으로 데라가 죽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130세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데라의 첫 아들은 하란이고 그 다음이 나홀이고 아브라함은 막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왜 아브라함을 첫 아들처럼 제일 앞에 두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바벨탑 사건이후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하구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위치합니다.

이집트 학자인 브레스테드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낀 지역을 비옥한 초생달 지대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만큼 기름진 땅입니다.

역사적으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주변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이 지역은 니므롯이 세웠던 고대 바벨론 제국이 있었던 곳이고 그 후 그곳은 수메르인들이 차지하였습니다. 이곳은 고대 중근동의 우상숭배 발원지입니다. 고고학적으로 이 지역에는 신전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지구라트라가 발견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데라에게 이런 우상숭배가 심한 갈대아 우르를 떠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행7:2-3)

창12장 1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본토 친척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시기 전이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은 데라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이 아브라함에게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것은 아버지 데라에게 말한 것입니다.

데라는 좀처럼 갈대아 우르를 떠나지 않다가 첫째 아들 하란이 죽자 떠날 것을 결심합니다.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데라의 첫아들 하란이 우상숭배를 거부하다가 우르 신전에서 처참하게 살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전승이 생긴 이유는 아들이 ‘먼저’ 죽었다는 말의 히브리 원어가 ‘면전에서’ 죽었다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데라는 아들이 죽자 모든 가족을 데리고 우상숭배가 심한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가다가 첫 아들 이름과 같은 하란 땅에 머물게 됩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창11:31)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약 600마일 즉 960km나 되는 먼 거리입니다.

960km면 서울과 부산 왕복의 거리입니다. 아마 족히 세 달은 걸렸을 것입니다.

하란지역은 갈대아 우르와 팔레스타인을 연결해 주는 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입니다. 이곳은 교통의 요충지이며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삶이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도 역시 우상숭배지로 달신을 섬기는 지역이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하란은 달신을 섬기는 근원지였다고 말합니다.

‘하란’이라는 말의 뜻은 ‘잠시 머무는 곳, 낭비하는 곳, 방향전환’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데라는 이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머물게 됩니다. 데라는 하란의 생활이 가나안을 가기 위한 잠시 머무는 곳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데라는 이곳에 머물면서 살아남기 위해 우상숭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데라의 삶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수24:2)

데라는 잠시 머무는 하란이라고 생각하며 있었으나 그는 점점 하란 사람들과 동화되어 나중에는 우상숭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데라는 이곳 하란의 삶이 익숙해졌습니다. 이제 자리도 잡았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곳에서 삶을 마칩니다.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창11:32)

데라는 자신이 이렇게 갑자기 죽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지금 까지 말한 아브라함에 대한 배경지식은 창세기 11장에 나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창세기 12장에 등장하기 까지 그의 모습은 우울하고 어두운 회색빛이었습니다.

그는 일찍 갈대아 우르와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음성을 듣기 전까지의 삶은 어디를 보나 누가 보아도 복의 근원이 된다거나 믿음의 조상이 될 만한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는 가나안을 가라는 비전을 받았지만 여전히 낭비하는 인생, 잠시 머무는 장소인 하란 땅에 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