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사도행전 8:14-17)
마가의 다락방에서부터 시작된 초대교회가 크게 부흥하자 사울이 초대교회 7 집사 중에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스데반과 함께 초대교회 7 집사가 된 빌립은 친구 스데반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는가?’하며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복음을 위해 열심히 사는 데 조금 어려움이 오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하며 의심을 하고 하던 일을 중단합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한 자는 고난이 온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성령충만한 자는 상황과 상관없이 사명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빌립은 스데반의 죽음에 아랑곳 하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사명에 따라 사마리아 성으로 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성에 사는 자들을 유대인의 피가 반 정도 섞인 혼혈족들이라고 비난하면서 그들을 절대로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사마리아 성으로 갔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가서 복음을 전한 사건은 평범한 사건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1000년 넘도록 막혀 있었던 복음의 문을 여는 것이고, 천년이 넘도록 서로 관계를 깨져서 만나지도 않았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만남을 회복하시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만약 빌립이 친구 스데반의 죽음에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었더라면 사마리아 성 1000 년 동안 닫혔던 복음의 문이 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집사였지만 성령충만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사마리아 성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자 기적과 표적이 일어났습니다(행 8:5-6).

여러분, 성경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을 아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성경 말씀이 내 안에서 작동하려면 성령님이 계셔야만 합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서 우리는 세례에 대해서 이해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례에는 두 가지 세례가 있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주인으로 모실 때 받는 것입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물세례는 내 죄가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능력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하는 인생을 살려면 이 세상을 능히 이기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물세례가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능력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는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을 받는 여러 가지 방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도행전 1:14 절에 성령받기 위해 오로지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합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

두 번째는 오늘 본문처럼 성령충만 한 자가 성령이 부어지길 기도하며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합니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7)

세 번째는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임합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 10:44)
여러분,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않고는 그 누구도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눅 11:13). 이 약속을 의지하고 성령충만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