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십시오 (요한복음 1:1-18)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요 20:31).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 번째로 예수님은 태초 전부터 계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요한은 요 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말씀은 곧 예수님이십니다. 여기서 “태초”는 창세기 1장의 태초가 아니라, 이 땅에 시간 개념조차 없었을 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 태초부터 계시는 분으로서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십니다. 3절에는 예수님이 창조주로 모든 것을 지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여기에 “만물”은 “판타”라는 단어로 과거, 현재, 미래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과거에 만물을 지은 분으로만 이해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과거는 물론이거니와 오늘의 모든 것, 미래의 모든 것도 지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모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11:36에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고 고백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생명과 빛이십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4-5) 예수님 안에 있는 이 ‘생명’은 80-100살이 되면 죽는 유한한 목숨이 아닙니다. 여기에 사용되는 “생명”은 헬라어로 ‘조에’라는 단어인데 ‘영원히 사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 씀은 예수님 안에 영원히 사는 생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생명이 바로 요한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주제입니다. 이 생명을 받지 못한 사람은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인생이기 때문에 우울하고 두렵고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은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그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참 빛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9-11)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러워지고 부패했다고 포기하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바뀌길 원하시고 지금도 바꿔가고 계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는 순간은 수천 년 동안 잠겨 있던 구원의 문이 인간에게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구약시대부터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 즉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분은 우리 곁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영원히 들어와 계십니다.
베들레헴 동네는 온통 호적조사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장사꾼들은 신이신 예수님이 육신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심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여관주인은 자신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차가운 말구유로 내좇았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몰라봤을까요? 세상일에 너무 바빴기 때문입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상일에 너무 바쁜 자들은 주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 생명이 없고 빛이 없음을 깨닫는 자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생명과 빛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생명이 넘치는 삶, 빛이 가득한 삶,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삶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