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

하나님의 호의가 따라다니는 사람.

시23:6

 

부모가 있는 자녀와 부모가 없는 고아는 삶을 사는 방법이 전혀 다릅니다.

부모가 있는 자녀는 아침에 일어나 식사할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늦잠을 자도 별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식사를 준비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아는 일찍 일어나 자기 스스로 밥을 해야 합니다. 늦잠이라도 자면 그날 아침을 먹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있는 자녀는 별 긴장을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그 자녀에게 베풀어 주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아는 늘 자신의 힘으로 살아야하기에 늘 긴장이 있습니다.

부모의 은혜가 있는 자와 부모의 은혜가 없는 자는 전혀 차원이 다른 삶을 삽니다.

우리는 원래 아담이 지은 죄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2:3)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다시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고후5:18)

우리가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2장에서 그것을 잘 말하고 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엡2:4-7)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 이제 하나님의 그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은 나의 능력이나 나의 인격 때문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따라 다니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은혜가 넘치는 자이십니다.

요한은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넘치는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충만하다는 것은 흘러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또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은혜는 율법을 주신 은혜보다 더 큰 은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1:16)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1:17)

요1:16절에 은혜위에 은혜라는 말은 요1:17절과 연결해서 읽어야 합니다.

은혜위에 은혜라는 말의 원어의 뜻은 은혜위에 은혜가 아니라 은혜를 대체하는 은혜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로부터 주신 율법의 은혜에 비해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가 훨씬 더 큰 은혜라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은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신 것은 말씀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예수님 때문에 말씀을 뛰어 넘는 더 큰 은혜를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열등감, 자학, 죄책감, 애정결핍, 외로움, 두려움, 자원고갈 같은 모든 부정적인 것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게 되면 그런 모든 부정적인 마음이 싹 사라지고 기쁨충만, 사랑충만, 자존감, 자신감, 만족감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시는 지극히 풍성한 은혜가 부어짐을 믿으십시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엡2:7)

누가복음은 예수님에게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호의를 입는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2:52)

우리 한글 성경에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가시더라고 되어 있는데 원어에는 카리티 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카리티가 바로 호의, 은총,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호의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좋아하였습니다. 그것이 호의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호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호의를 입은 몇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집에 8번째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약 40km 정도 떨어진 베들레헴이라는 산골동네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외모도 뛰어나지 않고 풍채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이름도 기억되지 않는 막내로 살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의 막내로 태어나 양이나 치며 사는 초라한 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사무엘이라는 사람이 와서 그에게 기름을 붓고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기름을 부음 받았다고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양이나 치는 초라한 목동이었습니다. 단지 그가 기름부음 받을 때 성령이 임한 것 뿐이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삼상16:13)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울왕이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을 앓고 있을 때 다윗을 불러 악기를 연주하게 하였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무척 좋아하며 다윗의 아버지에게 다윗을 왕궁에 머물게 하도록 하라고 말합니다.